모과나무에 모과는 없고 모과만한 향기들이 매달려 있다
모과보다 더 모과 같아
무섭고 무겁다
무언가 오래 머무는 자리마다 남아 있는 묘한 잔상들
지난 계절부터 거치대에 묶여 있는 자전거, 시멘트 바닥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 원조 국밥집 간판, 벽시계, 일요일의 송해, 어머니……
잘 보이는 곳에 없는 듯
있다가
사라진 뒤에야 완전히 드러나는 존재감
서랍 안쪽이나 문갑 뒤 냉장고 밑이나 구석진 꿈속에서 짜잔, 발견되는 유류품처럼
실물보다 더 실물 같아
반갑고
심히, 불편하다
- 서귀옥 시집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