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2시20분 서울역 광장. 노숙인 A씨가 술에 취해 광장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A씨 옆에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맥주가 놓여 있었다. 서울 중구에서 노숙인 대상 심야 ‘아웃리치’(현장지원 활동)를 하는 B씨가 A씨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며 말을 건넸지만 A씨는 대답 없이 욕설 섞인 혼잣말만 반복했다. B씨는 “평소 자해 위험이 있는 분이라 조심스레 다가간다”며 “여기엔 마음에 상처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의 건강상태를 살필 지원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서울의 경우 노숙인 지원센터에 배치된 정신과 전문의는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서울시로부터 입수한 ‘2024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6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정신질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39.2%였다. 질환별로는 우울증(19.3%)이 가장 많았다. 이어 조현병(11.3%), 알코올중독(7.8%) 등의 순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신질환 특성상 스스로 자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실제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을 지원하는 의료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3곳의 정신건강팀에는 전문요원 11명과 사회복지사 2명이 배치돼 있다. 정신과 전문의는 일주일에 하루만 근무하는 의사 1명뿐이다. 총 14명이 서울시 노숙인 3067명(지난해 기준)의 정신건강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신질환을 앓는 노숙인 각각의 사례를 관리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신질환 노숙인의 경우 자립이 어려워 거리로 재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모니터링 및 지원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시는 그나마 다른 지자체보다는 나은 수준”이라며 “적극적인 예산 편성과 함께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지원센터를 추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hy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