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조선족·팀원 베트남인… 풍경 달라진 한국 건설현장

입력 2025-05-22 02:05
게티이미지뱅크

21일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지는 않지만 한국말과 중국어, 베트남어 등이 뒤섞여 들려온다. 얼핏 한국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날 현장에 투입된 이들 10명 중 4명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은 내국인 건설 노동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젊고, 5년 이상 경력자가 맡는 ‘반장’도 빠르게 이들로 대체되고 있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간관리자인 반장들은 주로 한국인이었는데 최근 조선족으로 많이 교체됐고 국적도 다양해졌다”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배제하면 한국 건설현장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퇴직공제 가입 외국인 건설노동자 데이터를 분석한 데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업에서 일한 외국인은 22만9541명(14.7%)이었다. 실제로는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퇴직공제는 공공공사 1억원 이상, 민간공사 50억원 이상에만 의무 가입이라 소규모 현장은 빠지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 외국인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필수 인력이 된 지 오래다. 내국인들이 꺼리는 현장을 외국인이 점차 채워가면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더 젊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외국인 건설노동자 입직 당시 평균 연령은 42.5세였다. 내국인(45.7세)보다 3.2세 어리다. 현재 일하고 있는 이들의 연령을 비교해도 외국인(47.4세)이 내국인(52.7세)보다 4.4세 젊다.

언어와 출신 국가를 기준으로 건설 인력 시장이 갈라지는 모습도 보인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관계자는 “서울 대림엔 중국동포, 동대문엔 고려인, 남구로엔 중국인과 네팔인, 용산엔 카자흐스탄인, 이태원엔 이집트인이 모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도 “경험치가 쌓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발이 맞는 자국민들끼리 팀을 꾸리다 보니 지역마다 국적이 갈리는 모습이 나온다”고 했다. 외국인 건설 노동자는 조선족이 83.7%다. 최근에는 본토 중국인(5.9%) 베트남인(2.2%) 한국계 러시아인(고려인·1.7%) 우즈베키스탄인(1.6%) 미얀마인(1.3%) 캄보디아인(1.1%) 등 출신국가가 다양해지고 있다.

노동자들 간 갈등도 있다. 한 내국인 일용직은 “우리 일자리가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조선족 노동자도 “노임이 싼 한족이 들어오면서 우리도 밀려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박세중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더 싸고 더 쉽게 부릴 수 있는 불법적 고용행위가 사실상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사 관계자는 “한국인들에게 월급을 더 준다고 해도 잘 안 온다”고 반박했다.

건설업계는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GS건설과 DL이앤씨 등은 인공지능(AI) 번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대우건설은 11개 언어로 외국인 노동자용 안전보건교육 영상을 별도 제작했다. 대한건설협회는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장기근속제도 활성화를 중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