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땅’ 나가사키서 울린 “한국 기독인, 日 복음화 돕자”

입력 2025-05-22 03:00 수정 2025-05-25 16:38
제5회 한일문화교류회 참석자들이 21일 일본 나가사키 브릭홀에서 한국 CCM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고 있다.

‘순교의 땅’ 나가사키에서 한국과 일본 크리스천 사이에 화해와 협력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 내디뎌졌다. 한일연합선교회(이사장 정성진 목사)는 창립 2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제5회 한일문화교류회를 개최했다. 일본 크리스천은 패전국의 무한 책임을 강조했고, 한국 크리스천은 일본의 복음화와 양국의 화해를 위해 먼저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한일연합선교회는 21일 일본 나가사키현 브릭홀에서 한일문화교류회를 열고 하토야마 유키오(왼쪽) 전 일본 총리와 김하중(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을 초청해 역사적 책임과 화해에 대한 메시지를 청취했다.


제93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하토야마 전 총리는 강연에서 “우애는 과거의 이념이 아니라 지금 세계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며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듯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인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방한해 서대문형무소 순국열사기념관 앞에서 무릎 사죄를 한 바 있다. 그는 “한국에서 그만두라 할 때까지 일본은 끊임없이 사죄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역시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기독교인이다. 손자 유키오 전 총리는 조부 이치로 전 총리가 사할린의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외면하지 못했던 사연을 소개하며 “전쟁 피해에 대한 패전국의 책임은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통일부 장관, 주중 대사,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한 김 전 장관은 36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저술한 ‘하나님의 대사’(규장)로 유명하다. 김 전 장관은 “한·일 사이 민감한 문제에 관해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행동을 보인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며 박수를 보냈다.

김 전 장관은 “한국 크리스천은 양국이 더는 싸우지 않기를, 서로 돕고 협력하기를, 그래서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며 “우리는 일본 복음화를 도와야 하며 일본이 한국의 도움을 기쁘게 받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WGN(World Good News) 이사장으로 취임한 임현수 캐나다 큰빛교회 원로목사는 이날 ‘일본 통하여 북한으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일본이 북한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몽골 독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교회들이 북한 선교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이 자리에 있는 500여명의 증인이 살아있는 동안 통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화교류회에선 거룩한빛광성교회 난타팀의 공연과 나가사키 남성합창단, 오르텐시아 여성합창단의 공연 등이 진행돼 양국의 마음을 잇는 역할을 했다.

선교회는 그동안 기독교 탄압으로 30만명 이상이 순교한 일본의 순교지를 개발해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사역을 펼쳐 왔으며 이번 행사에 앞서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도 진행했다. 탐방 일정에는 히라도의 마쓰라 사료박물관과 야이자 사적공원,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터,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 26인 순교비 등이 포함됐다.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일본 26성인 동선장 터' 모습. 한일연합선교회 제공

20일 순례객들은 히가시 소노기의 ‘일본 26성인 동선장 터’를 방문해 일본 최초의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금교령을 내렸지만 기독교 교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 오사카에서 선교사 24명과 신자를 체포해 나가사키까지 걸어오게 한 뒤 처형했다. 이들에 자발적으로 2명이 더해져 26명이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20일 나가사키현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터'에서 정성진(가운데) 한일연합선교회 이사장이 성찬식을 마친 뒤 축도하는 장면. 한일연합선교회 제공

이후 오무라의 스즈타 감옥터를 방문한 순례팀은 성찬식에 참여했다. 20㎡(6평)의 스즈타 감옥터에는 많게는 33명까지 수용됐으며 눕지 못하는 것은 물론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감옥에 갇힌 사람 중 3명은 옥중에서 순교했다. 감옥터에는 선교회의 요청으로 하얀색의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순례객들은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를 부르며 십자가 사랑과 순교자들의 신앙을 묵상했다. 장상호 청주 서원교회 목사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선택하며 생명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가사키(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