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시절 호평받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명박정부 시절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기관장들의 퇴진을 밀어붙인 것이다. 당시 “정권교체 후 챙겨줄 사람은 많은데 자리가 없으니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유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 아니겠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서울시장이 바뀐 후 서울문화재단 대표에서 물러난 것을 거론하며 ‘소신’이라고까지 말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과 파면 그리고 대선 국면의 와중에 유 장관과 문체부가 정책을 쏟아내고 인사권을 행사해 비판받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된 순간부터 정부 부처는 주요 의사결정을 보류하고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게 순리라는 국민의 상식과 정반대여서다. 앞서 유 장관이 이명박정부 시절 밝혔던 ‘소신’과도 어긋난다.
문체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관광공사, 국립국악원 등의 기관장을 임명하려다가 논란이 거세지자 포기했다. 하지만 국가유산진흥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기관장은 임명을 강행해 ‘알박기’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지난 4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당장에는 과거 예술인복지재단 대표에게 갑질해 논란을 일으킨 문체부 출신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운영관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사장에는 유 장관이 창단한 극단 광대무변의 김명규 대표가 임명돼 예술계의 분노를 샀다. 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경우 용산 대통령실 국민제안비서관을 지낸 정용욱 문체부 종무실장이 임명됐는데, 2주 뒤에야 대표 취임 알림 공문을 문체부 산하 일부 공공기관에 보낸 것이 국민일보 보도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런데 문체부는 최근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등 장관이 직접 임명하거나 임명을 승인하는 국립예술단체 15곳의 단체장(단장, 예술감독, 대표 등 다양한 위상 총칭)을 공개 모집 및 공개 검증으로 선발한다고 밝혔다.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만 놓고 보면 나쁠 게 없다. 특히 그동안 실력 없는 일부 예술가들이 기관장을 노리고 정치인에게 줄 대던 행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수십 명의 평가단과 참관인 앞에서 발표를 시키는 방식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예술계에선 수치만 놓고 평가하기 어려운 예술의 특성상 예술감독선정위원회를 투명하게 구성한 뒤 후보 인터뷰 등을 통해 뽑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다. 대신 선정위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공정성을 담보하고 위원의 책임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예술감독을 뽑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국내에선 그동안 국립예술단체장을 뽑으면서 선정위를 구성했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문체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인복지재단 등 산하 공공기관 수장 인선은 이번에 제외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이들 공공기관장은 수년 전부터 고시 출신 문체부 퇴직 관료들 몫이 된 상태다. 문체부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문화예술계는 이들 공공기관 단체장 인선이야말로 평가단과 참관인 앞에서 운영 방침을 발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공모 형태지만 사실상 비고시 출신 문체부 퇴직 공무원이 오는 국립예술단체 사무국장 역시 기관 이해도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공개적 인선이 요구된다. 문체부가 인사적체 해결을 위해 ‘예술정책’을 이용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