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담배 소송, 전향적 판결을 기대한다

입력 2025-05-22 00:38

오늘(22일)은 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담배소송의 2심 최종변론이 있는 날이다. 공공기관이 제기한 국내 첫 담배소송이어서 관심이 더 집중되는 것 같다. 이전에 폐암 환자와 유족이 낸 세 차례 개별소송은 모두 패소했다.

건보공단은 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20갑년) 혹은 30년 넘게 담배를 피워오다 폐암·후두암에 걸린 3400여명의 급여 진료비 533억원(2003~2012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2014년 제기했다. 흡연이 폐암·후두암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의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6년 만에 1심 법원은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항소심은 단순한 배상 차원을 넘어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 담배회사에 흡연 폐해의 법적,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흡연의 건강 폐해는 막대하다. 30세 이상에서 직접흡연으로 목숨을 잃는 이가 연간 6만명에 달한다(2019년 기준). 간접흡연의 영향도 상당하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2022년 기준 3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런데도 담배회사는 흡연 피해자들의 질병 고통과 국민의 비용 부담은 아랑곳 않고 담배를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아무리 기업 영업활동의 자유를 감안한다고 해도 요즘 흔하게 언급되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2심 재판부가 정의로운 판결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항소심 재판의 쟁점은 흡연과 질병의 인과성, 담배회사의 제조물·불법행위 책임, 공단의 직접 손배청구 가능 여부 및 배상액 범위 등이다. 1심 재판에선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 큰 관심사가 흡연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인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많은 연구를 통해 충분히 쌓여 있다. 앞서 개별소송 판결을 보면 우리 법원도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한다. 하지만 개인의 폐암이 흡연 외에 유전이나 생활습관 등 다른 위험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개별적 인과관계’는 불인정했다(2심에서 일부 인정 사례도 있음).

그런데 엊그제 2심 재판부가 유념해서 봐야 할 근거가 제시됐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에서 이번 소송 대상 암종인 소세포폐암, 편평세포폐암, 편평세포후두암 발생에 흡연의 기여도가 각각 98.2%, 86.2%, 88.0%로 매우 높게 나왔다. 반면 유전 요인의 영향은 아주 미미해 유의미하지 않았다. 또한 흡연과 질병 발생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30년 이상 흡연한 사람에게 다른 요인이 관여했는지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높은 역학적 인과성을 갖는다면 최소한 환자에게 유리한 간접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담배회사는 또 담배를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기호품이라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 기호품은 중독성이 없으나 담배는 니코틴 중독에 의해 강한 의존성을 유발한다. 흡연은 개인 선택이 아닌 담배회사가 제품을 계속 팔아먹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중독의 결과다. 이런 담배회사의 비도덕성은 미국의 담배소송 과정에서 회사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선 담배회사 책임을 인정해 거액의 배상이 이뤄진 사례가 다수 있다.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담배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물을 때가 됐다. 흡연 폐해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진 점도 재판부가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의 최근 설문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은 흡연이 폐암을 유발하고 64%는 담배회사가 폐암 등 환자 의료비를 배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모든 쟁점에 대해 담배회사의 책임을 물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인과관계 등 일부라도 긍정적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심 재판부의 전향(轉向)적인 판결을 기대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