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과로 아니면 실업이란 현실에 대하여

입력 2025-05-24 00:33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많은 사람들을 덮치고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은 업무프로세스를 아는 사람에게는 두세 명 몫의 팀원 역할을 해준다. 그러니 기업은 일을 알고 인공지능을 잘 다루는 직원에게 여러 사람 몫의 일을 시키게 되고 일을 모르는 신입직원을 뽑지 않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는 하지만 추세상 실업자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실업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경기는 더욱 침체될 것이다. 각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는 효율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들의 집합이 가져오는 결과는 경기 침체다. 이 경기 침체는 개별 기업들로 하여금 또다시 허리띠를 조이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다시 누군가는 실업자가 되고 일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과로에 시달리게 된다.

2001년 방문학자로 캐나다 오타와에서 체류한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교대근무를 통해 우체국과 병원이 밤 9시까지 영업을 했다. 우리나라는 6시까지만 한다고 했더니 그럼 직장인은 병원과 우체국을 언제 가느냐고 캐나다 친구들은 물었다. 인공지능이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해준다면 그 절약된 시간과 에너지로 사람을 돌보는 서비스를 확충하면 될 일이다. 예를 들어, 노인 가구의 장을 같이 보는 일,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일 등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보호관찰관 인원을 늘려서 소년범이 사회에 다시 잘 정착하도록 도우면 좋을 것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여가를 늘리면 공연계도 활발해질 것이고 덕분에 예술인들의 실업도 줄 것이다.

대학도 교수 충원 관련 교육법 규정을 제대로 지키면 박사 실업 문제가 전폭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대학교수를 적정 인원으로 뽑지 않으니 대학교수들은 과로에 시달려 연구를 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교수 선택권, 과목 선택권에 제한을 받는다. 제대로 된 토론 수업, 학생에 대한 일대일 피드백 등은 언감생심이다. 비정년트랙 교수들이 말도 안 되게 감당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건 저기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로에 시달려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실업자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게 되는 이상한 현실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으로 선택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지구는 120억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해낸다. 그런데도 사망 원인의 4분의 1이 기아다. 러셀의 진단이 맞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내가 쓸모없어질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인류는 왜 기술을 발전시키는가?’ 하는 근본 질문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실업자로 만들기 위해서 기술을 발전시키는가? 정말 우리에게는 과로 아니면 실업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뿐인가?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