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 갈라파고스’로 국부 유출 우려 커진다

입력 2025-05-21 01:04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 개설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가 ‘김치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시세가 해외보다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야기하고 국내 시장의 발전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규제 당국은 2017년 디지털 자산 과열 사태에 따라 긴급대책을 마련하면서 2021년 외국인의 국내 거래소 계좌 개설을 사실상 금지했다. 계좌 신설을 시도할 수 있지만 본인 확인 절차가 어려워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해외와 달리 내국인만 국내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어 김치 프리미엄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와 투자 금액은 계속 늘어나는데, 유동성이 원활하지 않아 이상 가격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날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일 평균 거래규모는 7조3000억원으로 상반기(6조원) 대비 22% 늘었고, 원화 예치금도 10조7000원으로 6월 말(5조원) 대비 114% 증가했다. 국내 거래소에 등록된 고객확인 의무를 거친 개인과 법인 이용자(중복 포함)는 970만명이다.

문제는 국내의 가격 왜곡 현상을 피하기 위해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이것이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국가별 고객 수를 보면 한국이 2위(점유율 13%)다. 1위는 점유율 20%의 중국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 미비로 인해 국내 자금이 해외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면서 수수료와 거래액만큼의 국부가 유출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내 시장이 글로벌 유동성과 연결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디지털 자산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은 국내 거주 외국인을 시작으로 외국인에 대한 단계적 투자 접근성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65만여명이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등 주요 글로벌 거래소도 고객확인제도(KYC)를 완료한 외국인에 한해 거래를 허용한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자본시장이 점차 글로벌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 자유롭게 가능한 것처럼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외국인의 투자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