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사단 김승우 중위입니다. 도시락을 먼저 만들어 주시면 내일 바로 결제하겠습니다.”
광주에서 도시락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달 11일 자신을 지역 향토사단인 육군 제31보병사단 소속 군인이라고 소개한 한 남성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내일 훈련인데 미처 전투식량을 준비하지 못 했다며, 도시락을 준비해주면 하루 뒤 결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의심쩍었지만, 이 남성은 관련 공문과 신분증을 보내왔다. 단골이라며 업체 메뉴를 꿰고 있는 것도 순간 든 의심을 사라지게 했다. A씨는 결국 “알겠다”며 주문받은 130만원 상당의 도시락 준비에 나섰다.
이후 도시락값을 결제하기로 한 다음날 이 남성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 남성은 “훈련중이라 카드사용이 정지된 상태다. 평소 거래하는 전투식량 납품업체가 있는데, 이곳에 전투식량 대금을 대신 결제해주면 도시락값과 함께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투식량 납품업체의 사업자등록증은 물론 전자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를 A씨에게 보내왔다.
요구한 금액이 커 이번에도 의심이 들었지만, 자영업을 오래 해온 A씨는 주로 사후 결제하는 ‘관(官)’의 속성을 알았기에 또 한번 의심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남성이 알려준 계좌에 도시락값을 제외한 6650만원을 3번에 걸쳐 송금한 A씨는 그때서야 ‘아차’ 했다. 최근 기승하는 군인, 교도관, 소방관 등을 사칭한 ‘노쇼 사기’에 제대로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이미 돈을 보낸 뒤였다.
최근 인천에서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비서관을 사칭한 노쇼 사기가 발생했다. B씨는 가짜 명함을 보내면서 “의원님이 꼭 원하는 와인이 있는데 주류를 판매하는 취급점에서만 거래하고 있다”며 병당 700만원인 초고가 와인 2병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군인·정치인·연예인 등을 사창한 ‘노쇼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 피싱범죄수사계를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해당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다. 노쇼 사기가 피싱이나 투자리딩방 사기 같은 사이버 기반 사기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최근 노쇼 사기는 ‘2단계’ 속임 구조 형태다. 피해자가 운영하는 업체 물품을 대량 주문하면서 나중에 함께 결제한다며 다른 업체의 물품을 대신 구매해 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가령 식당에 선거 운동원 수백명의 회식을 예약하면서 특정 와인 판매업체에 고급 와인 주문을 대신 해달라고 한 사례가 있었다. 피해자인 식당 주인이 구매 대금을 송금하면 최초 주문자와 공범인 와인업체 모두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경찰은 현재 노쇼 사기들이 주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콜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로 대량 주문이 들어오면 연락 온 전화번호가 아닌 해당 공공기관·사무실의 공식 전화번호에 직접 확인해서 물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광주=이은창 기자, 신재희 기자 eun526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