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은 공직사회 접대 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공직자들이 직무 수행이나 사교, 의례 등의 목적으로 3만원 초과 음식물(식사비) 접대를 받지 못하도록 했다. 고급 한정식집이나 룸살롱 등에서 공직자들을 접대하는 문화가 남아 있을 때 만들어진 법으로 당시 공직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법 시행 뒤 관공서 주변 식당에 2만9900원짜리 메뉴가 속속 등장했다. 그러다 3만원짜리 메뉴를 찾기 어렵다는 공직사회의 엄살과 음식점 단체의 요구에 지난해 9월부터 식사비가 5만원으로 올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가 유흥주점에서 접대 받았다고 주장하자 지 부장판사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평소 삼겹살에 소맥(소주·맥주)을 마시며 지내고 있다.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그런 데 가서 접대 받는 건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 시대 자체가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주 한국소비자원은 서울의 식당에서 파는 삼겹살 1인분(200g)이 평균 2만447원이라고 발표했다. 고깃값이 오르고 인건비와 임대료가 오른 탓이다. 그래서 보통 200g이던 1인분이 180g이나 150g으로 줄어 더 낮은 가격에 팔리곤 한다. 설사 삼겹살에 소맥을 접대 받는다고 해도 적당히 먹으면 김영란법에 얼추 맞춰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공직자들이 이해관계인들로부터 과하게 접대를 받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하지만 지 부장판사 말대로라면 본인은 그런 접대는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평소 술 한 잔 할 때도 삼겹살에 소맥 정도만 먹는다니 나름 모범적인 공직자인 셈이다. 이번 일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만약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이 허황된 것으로 판명된다면 ‘지귀연 생활법’이 공직사회에 새로운 롤모델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곳에서 접대 받을 생각조차 안 하고, 혹시라도 어울릴 일이 있다면 삼겹살에 소맥 정도 즐기는 생활법 말이다. 꼭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진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지켜볼 일이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