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 전문
함민복 시인은 시 ‘부부’에서 결혼을 일컬어 기다란 상을 함께 드는 일이라고 노래했다. 함께 상을 들고 걷는다는 건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때로는 앞을 보고 걷고 때로는 등을 내어주는 일. 끝까지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일이다.
부부의 날을 앞두고 지난 15일 만난 전신근(50) 서울 청파동네교회 목사와 제행신(52) 작가는 이 시를 소개하며 “우리 얘기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지난 25년간의 결혼 생활은 서로의 보폭을 맞추고 허리를 굽혔다 펴며 무게를 나누어 든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전 목사는 무슬림과 난민을 섬기는 GHA(Global Heart Alliance) 대외협력실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일용직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현장 근로자의 삶을 살아왔다. 제 작가는 동서문학상 수필 부문으로 등단해 ‘지하실에서 온 편지’(세움북스) 등 가정과 일상, 신앙을 담은 글을 써온 에세이스트다.
네 명의 자녀, 사역과 육아, 주말부부, 공동체 돌봄과 난민 사역까지. 그 긴 상 위에는 늘 삶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는 결국 무게를 바꿔가며 같이 드는 사이”라고 말한다.
제 작가는 “부부가 삶의 짐을 반반으로 나누자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 작가는 “삶의 무게중심은 마치 시소처럼 계속 바뀐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제가 정말 힘들었어요. 남편은 바빴고 저는 정신없이 육아 전선에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어느 순간엔 남편이 저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더라고요.”
제 작가는 결혼을 ‘같은 배에 타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혼 초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잘못한 거 아닐까.’ 근데 어느 날 수련회에서 ‘부부는 한배를 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갑자기 가슴에 박히더라고요. 아, 내가 할 고민은 이 사람이 맞는지가 아니라 이 배를 어떻게 잘 저어갈지구나.”
전 목사는 “우리 부부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반자”라고 했다. 두 사람은 아침이면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한다. 제 작가는 “그게 우리가 같은 배에 타 있다는 증거”라며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같은 노를 젓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최근 함께 쓴 책 ‘이런 결혼, 어때?’(죠이북스)에는 결혼 25년의 여정을 담았다. 단순한 연애 회고담이 아니라 싸우고 오해하고 지치면서도 다시 웃고 사랑을 선택한 이야기다. 그 중심엔 ‘언약’이 있다.
“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에요.” 전 목사는 단호히 말한다. “언약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 때문에 관계는 안정돼요.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를 끝까지 품겠다는 약속이에요.”
“요즘은 모든 게 조건부잖아요.” 제 작가가 거든다. “‘당신이 잘하면 나도 할게’ 같은 거요. 그런데 결혼은 그런 식으로 안 돼요. 언약은 변하지 않는 안전장치예요. 언약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부는 더 오래 더 깊게 가요.”
두 사람은 부부의 몸도 언약 안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 책, 제 느낌엔 39금이에요. 근데 음란하지 않아요. 아가서 같은 느낌이랄까요.” 제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스킨십 포옹 잠자리. 전 목사는 “사랑은 몸으로 확인하고 매일 새롭게 습관처럼 쌓는 것”이라며 “아무리 감정이 엉켜도 다시 안아주면 녹아내리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제 작가는 열정이 식은 부부들을 향해 “하루에 10초라도 포옹하라. 억지로라도. 사랑도 체온처럼 멀어지면 식는다”며 “가까워지려면 매일 만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전 목사는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넸다. “결혼은 끝까지 지키는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이에요. 잘 맞는 사람을 찾기보다 함께 성장할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매일 연습하고 자주 다투더라도 다시 손잡는 훈련을 하는 것. 그게 부부입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