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호미술관. 이 미술관 주최의 신진 작가 공모전 ‘금호 영아티스트’에 당선된 작가 총 6인 중 2부로 마련된 강나영, 유상우, 주형준 등 3인의 개인전(6월 15일까지)이 층별로 열리고 있어 최근 전시장을 찾았다. 강나영(36) 작가의 개인전 ‘외출하는 날’을 선보이는 지하 전시장에는 철판으로 된 울퉁불퉁한 길이 있고, 벽면에 길을 따라 손잡이가 부착돼 있다. 장애인에게 불편한 길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상이 투사된 스크린 같은 벽체도 울퉁불퉁하다. 벽체 위로 외출 나간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내다본 도시 풍경이 일그러지듯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앞서 강철규, 송승준, 이해반 등 3인의 수상자 전시를 1부로 마친데 이은 것이다.
강 작가는 올해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5월 마감에 맞춰 금호 영아티스트 공모전에 응모할 때만 해도 조마조마했다. 나이 제한 35세 이하의 마지막 턱걸이 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7월에 당선 통보를 받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격년제로 진행하는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젊은 모색 2025’에 뽑혔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신진 작가 등용문 두 군데를 통과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도 4월 중순부터 ‘젊은 모색 2025’ 전시를 하고 있다. ‘젊은 모색’의 경우 추천제라 강 작가도 2관왕을 할 거라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흔치 않지요. 지난해 7월 두 군데서 전시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힘들 걸 예상해서 그런지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어요.”
강 작가는 몸이 불편한 가족을 돌보고 있다. 한번 외출을 시키려면 온 가족이 동원되어야 하는 사적 경험을 금호 영아티스트 전시에 담았다. 이와 달리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전시에서는 ‘영화관’ 등 공적인 공간에서의 배리어프리 문제를 설치 미술로 제기했다. 그는 영국 리즈대학교 순수미술과 학사, 영국 왕립예술학교 조소과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2019년 귀국하기 전까지 해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경계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던 불안정함, 고독 등 심리적 문제를 특수한 상황이 투영된 장소와 순간을 설치, 사운드, 영상으로 담아왔다. 최근에는 관심사를 확장해 사회적 돌봄 문제로 주제를 확장하고 있다.
작가를 향해 올라가는 첫 사다리
미대를 졸업한다고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로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개인전이나 기획전을 통해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개인전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장소의 대관, 전시의 홍보, 운송과 설치 등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요 국공립미술관에서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진행하는 공모전이나 지원 제도는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올라가는 성공 사다리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전국 주요 국공립미술관이나 리움, 금호미술관, 송은, OCI미술관 등 사립미술관에서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의 전시 자체가 미술계에 노출돼 주목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 신진 작가 공모 제도에 선정된 작가들이 다음 단계의 사다리, 그러니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티켓을 거머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미술계에서는 ‘올작’으로 통하는 이 제도는 중견 작가들을 대상으로 해 ‘미술계의 과거 급제’에 비유할 수 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 4명에 선정된 박혜수 작가는 금호 영아티스트와 송은미술대상에 뽑힌 바 있다. 김상진, 강석호 등 금호 영아티스트 출신으로 ‘올작’ 작가가 됐다. 송은미술대상에서는 오민, 전소정, 김영은, 김지평 등이 국립현대미술관 ‘올작’ 작가가 됐고 최고은은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다.
신진 작가 지원제도에 뽑힌 작가들이 다음을 기대하는 것은 그래서다. 홍대 회화과를 나온 뒤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 가 현지에서 활동하는 김진희(35) 작가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에 뽑혔다. 그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상상의 이미지로 재구성한 회화를 선보여 왔다. 서랍에서 과자를 꺼내거나 책상에 앉아 물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아주 사소한 행위도 자신을 이루는 초상화라는 생각이 배어 있다. 김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사와 함께 진행하니 작업이 심화되는 측면이 있다. 또 미술관이기 때문에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일반 관람객보다 큐레이터, 화랑 관계자 등 미술계 인사들이 더 주목하는 전시다. 올해는 전시 기간을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리는 10월 12일까지로 길게 잡아 해외 미술계 인사에게도 노출될 기회를 제공한다.
변신하는 신진 지원제도
역사가 쌓이면서 지원 제도의 성격도 변하고 있다. 우선 선정 작가의 수적 확대가 눈에 띈다. 금호 영아티스트는 6회부터 1∼4명 선정하다가 2021년부터 6명으로 수상자를 늘렸다.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러다보니 전시 공간의 부족으로 전시도 1, 2부로 나눠서 진행한다. 송은미술대상도 이전에는 4명 최종 후보의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였다. 그러다 송은(구 송은아트스페이스)이 강남구 도산대로에 세계적인 스위스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설계한 신축 건물로 확장 이전해 온 2021년부터는 큰 공간에 맞춰 본선 진출 20명의 작품을 처음부터 전시를 통해 보여준다.
가장 큰 변화는 리움 아트스펙트럼이다. 리움은 2022년까지는 격년제로 추천제를 통해 45세 이하 작가 10명을 선정해 이들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다. 지난해부터는 예술감독을 선정한 뒤 감독이 ‘꼬마 비엔날레’처럼 주제전을 펼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2024년의 경우 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닛을 예술감독으로 초청해 ‘드림 스크린’을 주제로 국내 및 아시아에서 주목 받는 신예 작가 26명(팀)의 작품 60점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인터넷, 게임, 영화 등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밀레니얼 이후 세대의 감각과 시대상을 살펴봤다. 리움 측은 “공모제 형식은 다른데도 많이 있다”면서 “수상 제도 형식을 폐지함으로써 경쟁 체제를 탈피하고, 예술감독을 통해 미술계의 동향을 보여줄 수 있도록 방식을 전환했다”고 밝혔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