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경제에서 ‘악역’ 해야 할 차기 대통령

입력 2025-05-22 00:34

시대적 책무는 생산성 향상
노동시간 등 규제 줄이고
한계기업·업종 구조조정
대주주 사익편취도 교정해야

재정 승수효과 뚝 떨어졌는데
‘재정 주도 성장론’은 불안

일시적 인기 아니라
중장기 구조개혁 실행
험난하지만 좁은 길 가야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당선 직후부터 산적한 과제들에 압도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촌각을 다퉈야 할 사안은 크게 두 가지다.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급변한 외교안보 질서에 대한 대응, 그리고 추락하는 성장동력의 유지와 확충이다.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곳곳에서 비명과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비상상황이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서두르지 않으면 예약이 어려웠던 식당이나 술집 가운데 예약 문의 자체가 끊겼다는 곳이 수두룩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석 달 만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반토막 냈다.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키는 경기 하강에는 비상계엄 이후의 정치 불안과 미국발 관세전쟁 등 돌발 요인이 한몫했다. 하지만 주력 산업의 부진과 만성적 내수 침체로 성장동력이 고갈된 게 근본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구조적 위기’인 것이다. 국책연구원인 KDI가 불과 15년 뒤인 2040년에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0%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로(0)성장’의 장기불황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우선 차기 정부는 조선·화학·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한계기업 청산을 미루면 혁신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의 자원 이전이 줄어들고 결국 성장잠재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역대 정부가 한계기업 퇴출이나 통합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산업 현장 전반의 비효율이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을 규모별로 나눈 뒤 중소기업 보호에만 치중하는 기업정책도 쇄신해야 한다.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보호할 게 아니라 경쟁력이 확인된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나아가 기업 규모가 유일한 기준인 현행 기업 정책을 전면 개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기업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야 한다. 주력 산업이 하나둘 중국에 역전당하는 현실에서 ‘주52시간제 예외’를 확대하는 방안조차 막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근로시간조차 탄력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손봐야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정부의 직접 개입보다 시장 규율을 통해 해결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은 필요하다.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가 만연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는 바닥이다. 이러면 혁신적 산업 생태계와 성장잠재력 제고는 불가능하다. 차기 대통령의 시대적 책무는 나라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인 재정 투입으로 경기의 추가 하락을 막는 충격 완화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한국 경제에는 미래가 없다.

경기 하강을 막는 재정 투입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뿜어내는 정부지출 효과에 대한 비현실적 낙관론은 걱정스럽다. 경제학계가 추정하는 한국의 재정승수는 0.6~0.7 정도다. 재정을 1억원 지출했을 때 국내총생산(GDP)이 6000만~7000만원밖에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정지출의 경제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다. 특히 ‘호텔 경제학’으로 논란이 되는 이 후보가 선호하는 지역사랑상품권 같은 ‘소비쿠폰’의 승수효과는 0.26~0.36(2020년 KDI 분석)이다. 일반적 재정승수와 비교해도 절반에 불과하다. 빠르게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경고음을 내는 가운데 이 후보가 주창하는 사실상의 ‘재정 주도 성장론’은 정말 불안하다. 재정건전성은 차기 대통령이 특별히 경각심을 가지고 챙겨야 할 사안이다. 무디스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하향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정치적 셈법을 따지느라, 기득권층 눈치를 보느라 화급한 구조개혁 과제를 미루고 또 미뤄왔다. 더 이상의 개혁 지체는 경제를 회복 불가능한 막다른 절벽으로 몰아넣을 공산이 크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이미 바닥나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대중을 만족시키는 쉬운 길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기득권층과 부딪치면서 나아가야 하는 험난하고 좁은 길을 갈 각오를 해야 한다.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