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누군가를 위해 사랑으로 돌봐준 선교사 바울과 바울의 옆을 지켰던 바나바가 나옵니다. 22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의 목회자로 보냄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안디옥 교회에 성도들이 잘 자라나도록 돌봐줄 목회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바나바는 안디옥 성도들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라고 권합니다. 이는 바나바가 지속해서 권면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안디옥이란 도시는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였고 이방인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신앙 생활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떤 유혹이 와도 주님께 꼭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던 것이죠.
그의 성품은 사울에게도 영향력을 미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성도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하늘의 빛에 둘러싸여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토록 박해하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앞을 보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면서 회심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사울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사울과 사도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는 사울이 겪었던 체험 신앙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을 뿐 아니라, 사울의 믿음이 진짜임을 많은 사람 앞에서 확증해줬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목회하고 있던 안디옥 지역에 교회를 섬기고 가르치도록 사울을 동참시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나바는 예수님의 70인 전도자 중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직접 목격했던 무명의 제자였지요. 바나바는 사울보다 나이도 많았고 경험도 뛰어났습니다. 이런 그가 믿음의 연수도 자신보다 적었던 사울에게 공동목회를 제안합니다.
바나바의 사랑과 돌봄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를 통해 또 다른 일꾼들이 세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돌아올 때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선교에 대한 같은 비전을 품고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했지만 버가에 도착했을 때 선교를 포기하고 돌아왔던 사람입니다. 공동체의 비전을 등지고 떠났던 요한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돌봐주는 바나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마가 요한을 데려가느냐 마느냐 문제로 바울과 헤어져서 전도 여행을 떠나죠. 그는 바울과 각각 길을 가면서까지 이 요한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집안의 조카이기 이전에 바나바는 연약했던 요한을 사랑으로 격려하고 세우기 원했던 것이죠.
결국 바나바의 이런 사랑과 돌봄으로 마가 요한이 얼마나 성숙하게 됐는가. 바울이 인생 끝에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았을 때 자신에게 유익할 만큼 성숙하게 자랐던 이가 마가 요한입니다. 1차 선교여행 때 높은 산 때문에 겁먹고 돌아갔던 그 겁쟁이 마가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이 있기까지, 성경의 저자 마가가 있기까지 옆에서 함께 했던 바나바의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사랑과 돌봄은 밑바닥에 있던 사울을 위대한 선교사로, 마가 요한을 탁월한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바나바와 같이 오늘날 선교사의 역할은 선교지의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민경진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사
◇민경진 선교사는 GMS 소속 태국 선교사로 현지 교단인 태국 기독교총회 19노회와 태국 카렌총회와 협력하면서 카렌족 신학교인 실로암신학교에서 강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