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냉장고 구석에 있던 오래된 우유를 무심코 마셨다가 탈이 났다. 배가 울렁거렸고 머리는 어질어질했다. 밤새 이리저리 뒤척였다. 식중독 증세만 사라져도 행복할 것 같았다. 병원에 갈 정도가 아니어도 이렇게 괴로운데 정말로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몸이 망가지니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아파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잃고 나서야 아는 것들이 있다. 항상 가득 차 있거나 늘 곁에 있는 존재는 무감각하거나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매 순간 마시는 공기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 창문을 닫고 숨을 참는 순간 공기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늘 곁에 있을 때는 그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무심하게 대하다가 부재를 경험하면 빈자리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질병이나 사고로 일상이 제약받을 때 비로소 걷는 다리, 움직이는 손가락, 말할 수 있는 입과 듣는 귀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었는지 깨닫는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드러난다는 말처럼 사라진 순간에야 무엇이 내 삶을 지탱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상실은 나의 시선을 안으로 돌리게 해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한다.
상실을 견디는 과정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상실을 통과하면서 인간은 내면의 강인함과 회복하는 힘을 기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모든 상실은 우리 안을 확장하는 비밀스러운 방법’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상실은 잃어버린 자리에 새로운 틈을 열어 다시 살아갈 근육을 길러준다. 겉으로는 무너지는 듯 보여도 안에서는 다시 일어서는 회복의 씨앗을 자라게 한다.
다산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가족과 권력, 명예까지 잃고 18년간 귀양살이를 겪었다. 그러나 다산은 술로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대신 제자 양성과 저술로 채우며 고통의 시기를 삶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500권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며 최고의 경세가로 자리매김했다. 실패, 질병, 상실의 순간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그 밑바닥을 지나온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하고 깊은 인간으로 바뀐다.
상실은 또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부족함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상실을 겪은 자가 지닐 수 있는 마음의 결이다. 무언가를 잃고, 아파본 사람만이 남의 아픔과 사정에 귀 기울이고 그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 성숙은 가득 채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상실을 겪고 자신을 비운 사람에게서 나온다.
상실은 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며, 잊고 지냈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채워진 시간에서는 일상의 풍경이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멈춰 선 자리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소박한 식사 한 끼,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바람 한 줄기의 감촉도 다르게 다가온다. 상실은 더 갖지 못해 괴로워하기보다 이미 지니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짚게 한다.
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는 담을 수 없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상실은 우리에게 그 비움의 지혜를 제공한다. 없음이 있음의 의미를 묻게 하고, 멈춤이 삶의 방향을 조율하게 한다. 상실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성찰의 시간과 인간의 길을 제공한다. 상한 우유 한 잔은 배탈의 고통을 넘어 지금 내게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며 지금 누리는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줬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은 그 무언가를 다시 소중히 여기는 기회를 열어준다. 상실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