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여름이 무섭다

입력 2025-05-21 00:34

체감온도 40도 넘는 답 없는
건설 현장… 하나마나 대책,
구멍 투성이 제도 바로잡길

함께 일하던 형님이 쓰러졌다. 급히 구급차에 실려갔다. 나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더워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날 최고 기온은 36.6도였다.

현장에서 1년이라도 일해 본 건설노동자는 안다. 귀때기 떨어져 나갈 것처럼 칼바람 불고, 눈보라 휘몰아치고, 손발이 꽁꽁 얼다 못해 깨질 것 같을지언정 여름보단 겨울이 낫다는 걸 말이다. 그 정도로 우리에게 여름은 지옥, 그 자체다.

겨울은 그래도 어떻게 해볼 여지가 있다. 손발 시리면 두툼한 장갑 끼고, 털 안전화 신으면 된다. 얼굴은 귀마개나 넥워머로 감쌀 수 있다. 손난로도 요긴하다. 요즘은 발열 깔창도 나왔다. 현장 곳곳에 놓인 온열 기구로 틈틈이 몸도 녹인다. 그나마 바들바들 추운 건 오전 9시까지다. 고강도 육체노동이다 보니 두어 시간 바삐 움직이면 슬슬 열이 오른다. 혹한이 아닌 이상에야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그에 반해 여름은 답이 없다. 덥다고 옷을 다 벗을 수도 없고, 다 벗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목선풍기니 아이스조끼니 하는 소소한 아이템도 별 효과 없다. 팔팔 끓는 물에 칵테일 얼음 한두 조각 넣는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겨울엔 오전 9시면 땡인데, 여름엔 오전 9시부터 시작이다.

오전 9시, 해가 뜨기 시작하면 습도도 함께 오른다. 이때부턴 숨 쉬는 것도 괴롭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알 거다. 오전 내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일하다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왔을 때 숨이 ‘컥’ 막히는 느낌 말이다. 현장에선 그 느낌이 종일 이어진다. 정오부터는 체감온도가 40도 이상 올라간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직사광선, 콘크리트 바닥에서 튕겨 나오는 반사열, 온몸에서 뿜는 체열까지 더해지니 그럴 만도 하다.

오후 2시부터는 절정이다. 콘크리트 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잠깐만 서 있어도 발바닥이 후끈후끈해진다. 두꺼운 안전화를 신었는데도 그렇다. 머리도 어질어질해진다. 속도 울렁울렁한다. 이렇듯 가만히만 서 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날, 20㎏짜리 자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열 번만 왔다 갔다 해도 진이 쏙 빠진다.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수준을 넘어 줄줄 샌다. 오후 5시, 드디어 퇴근이다. 일을 했다기보다 겨우 버텨냈다는 생각뿐이다.

건설 현장 온열질환은 심각한 수준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8~2023년 온열질환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가 147건이었다. 이 가운데 건설업이 70건(48%)이나 차지했다. 온열질환 사망 사고도 전체 22건 가운데 건설업이 15건(68%)이었다. 여름이 더욱 절망스러운 건 지난해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덥다는 관측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철(6~8월) 전국 평균 기온은 25.6도로 평년(23.7도)보다 1.9도 높았다. 기상관측망을 전국으로 확충한 1973년 이래 1위를 기록했다. 폭염일수도 평년(10.6일)보다 2.3배 많은 24.0일을 기록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가파른 속도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렇다. 기후 위기다.

이런 마당에 고용노동부는 폭염 대책이랍시고 수년째 ‘물, 그늘, 휴식’만 강조한다. 더우면 물 마시고, 그늘에서 쉬란 얘기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39조 규칙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31도 이상에서 작업하는 경우 냉방, 통풍을 위한 온·습도 조절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옥외 사업장은 제외했다. 정작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죽는 건 옥외 작업자인데 말이다. 또 33도에서 작업하는 경우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하라는데, 여기에도 ‘연속공정 등 작업 성질상 휴식시간을 부여하기 매우 곤란한 경우’는 예외로 뒀다.

기후 위기에 따른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렇듯 구멍 숭숭 뚫린 개정안으로 누굴 보호하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다가오는 여름이, 무섭다.

송주홍 작가·건설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