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로부터 택배가 왔다. 근래에는 잘 읽지 않던 장편소설 책이었다. 양장본을 감싼 군청색 띠지에 인쇄된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파괴적인 세계를 향한 최선의 다짐이자 사랑.’ 친구가 건넨 말이 설핏 떠올랐다. “책을 선물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서.” 보고 싶지만 당장은 만나지 못하니 책으로 대신한다는 숨겨진 마음이 뒤늦게 느껴졌다.
친구의 예상이 맞았다. 나는 소설에 푹 빠져들었다. 매일 밤을 쪼개 독서시간을 마련하고, 한 장 한 장 넘기는 걸 아쉬워하며 아주 근사한 날들을 보냈다. 소설의 여운만큼이나 가시질 않는 게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어떤 대목에서 나를 떠올렸는지, 어떤 구절을 전하고 싶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도 내 감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나누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놀라웠다. 누군가와 이토록 충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다고 한다. 남녀 간 사랑인 에로스(Eros),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이타적 사랑인 아가페(Agape) 그리고 친구 사이의 우정인 필리아(Philia). 오래전부터 우정을 사랑의 한 형태로 여겼다는 사실은 이 감정이 얼마나 깊고 섬세한지를 곱씹어 보게 한다. 우정이란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상호 신뢰와 관심으로 자라나는 귀한 감정이 아닐까. 그녀에게 느끼는 우정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온 오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어떤 인연은 한 계절 바람처럼 스쳐 가고, 어떤 인연은 해와 달처럼 삶을 동행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 중 극소수만이 필리아의 인연을 맺기에, 일생을 두고 사귀는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친밀한 이름, 반가운 얼굴, 함께 써 내려간 사연을 떠올리며, 산문집 한 권을 그녀에게 보냈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