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군 현대화와 국방산업 자립을 위해 대규모 무기 도입과 현지 생산을 추진하면서 세계 방산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미국·유럽·한국 등 주요 방산 강국이 앞다퉈 사우디 시장에 진출하면서 현지화·기술이전·공동개발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 계획의 일환으로 수입에 의존하던 방위산업의 국산화 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우디 국영 방산기업 SAMI는 글로벌 기업 간 합작법인 설립, 기술이전, 현지 생산 확대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 중이다.
포문을 연 곳은 미국이다. 지난 13일 미국과 사우디는 총 1420억 달러(약 198조원) 규모의 방산 계약을 체결했다. 백악관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협력”이라고 자평했다. 이번 계약은 공군·우주, 미사일 방어, 해양·연안 안보, 지상군 현대화, 정보통신 등 5개 분야에 걸쳐 장비 도입과 업그레이드, 교육훈련, 유지보수, 군 의료 등 포괄적 지원을 포함한다.
한국은 사우디의 군 현대화 수요에 맞춰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표 지상 무기인 K9 자주포와 함께 레드백 장갑차, 무인수색차량 등 신형 무기체계를 사우디 방산 전시회에 선보이며 현지화·기술이전·운용유지를 묶은 패키지형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LIG넥스원이 생산하는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Ⅱ’는 지난해 2월 약 32억 달러(약 4조4502억원) 규모로 사우디에 수출했다. 한국은 이를 계기로 방산 분야에서 사우디와의 실질적 수출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을 사우디에 수출하기 위해 접촉 중이다. KF-21은 미국·유럽 무기와의 호환성과 경쟁력 있는 가격 등으로 사우디 공군의 현대화 옵션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현지에서 받고 있다.
현재 사우디는 단순 무기 도입을 넘어 생산기반 구축과 군사기술 자립, 현지 인력 양성 등 포괄적 파트너십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한국 등 주요 방산 기업들은 단순 판매에서 벗어나 현지 합작, 공동개발, 장기운용 지원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제시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9일 “한국이 사우디와의 전략적 협력 강화, 무기체계 현지화, 공동 연구개발 등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중동 방산 시장에서의 입지를 크게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