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과 열차 운임 등 공공요금 인상 여부를 둘러싼 딜레마는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요금을 올리면 물가 자극이, 동결하면 공기업 부채 누적과 안전 투자 지연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시내버스·지하철·택시 요금은 올해 조정 여부를 가를 분기점에 서 있다. 요금 인상의 바로미터인 서울시는 2년마다 요금 적정성을 검토하는데, 마지막 심의가 2023년에 이뤄져 올해 인상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방 공공요금 인상은 지자체 소관이지만 여론과 새 정부의 물가 기조에 좌우될 수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수도권 지하철 요금 인상도 정부의 물가관리 기조에 따라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중교통 요금의 적정성 검토는 원칙적으로 2년마다 이뤄지지만 실제 심의 여부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주요 대선 주자들은 접근 방식에 차이는 있어도 공공요금 인상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6일 유세에서 “전기료 인상은 필요하지만 당장은 아니다”고 밝혔다. 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 경제 여건상 즉각적인 인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아예 ‘반값 전기료’ 공약을 내놨다.
이 같은 정치권의 신중한 태도는 주요 공공요금이 장기간 묶여온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5대 공공요금(전기·가스·철도·도로 통행료·상수도 요금)은 대부분 동결 기조를 이어왔다. 한국고속철도(KTX) 운임은 14년째, 고속도로 통행료와 광역 상수도 요금은 각각 10년, 9년째 동결돼 있다. 전기와 가스 요금은 윤석열정부 들어 부분적 인상을 단행했지만 미수금 등을 고려할 때 인상 폭이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공공요금을 담당하는 주요 공기업의 재정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부채는 지난해 205조원으로, 5년 새 1.5배가량 급증했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도로공사의 부채도 같은 기간 각각 28조원에서 46조원, 31조원에서 41조원으로 늘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조원대, 서울교통공사는 7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다.
요금 동결 장기화는 안전 투자 지연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코레일에 따르면 현재 운행 중인 KTX 고속열차 절반 이상은 기대수명이 2033년까지로, 교체까지 9년밖에 남지 않았다. 교체 비용은 약 5조원으로 추산된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후화 차량 교체가 지연되는 등 안전 확보에 차질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반면 요금 인상이 물가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지난해 하반기 1%대로 낮아졌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들어 반등하면서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연속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발(發) 관세 정책이 환율과 유가를 흔들며 외부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공공요금 현실화에 대한 결단 부재는 국비 투입으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노후 철도차량 교체에 국비를 투입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재정 투입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지금 가격을 올려 에너지 소비를 줄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민 부담을 덜어내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