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 대학 로스쿨 도서관이 소장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문서가 복사본이 아닌 1300년 발행된 진본임이 확인됐다고 지난 14일 영국 BBC가 보도했다. 데이비드 카펜터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와 니콜라스 빈센트 이스트앵글리아대 교수의 고증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1945년 런던의 한 서점에서 27.50달러에 팔린 이 문서는 이제 수천만 달러의 가치를 지닌 역사적 진본으로 재조명받게 됐다.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 영국 존 왕이 귀족들과 체결한 협약이다. 영국사에서 처음으로 왕이 자의적 권한을 문서로 제한한 역사적 헌장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는데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에드워드 1세가 1300년 승인한 마지막 개정본이다. 이 문서는 입헌군주제의 출발점이자 근대 헌정질서의 근간이다. 특히 제12조와 제39조는 과세와 법적 보호의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영미법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정치적 이유로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발견은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첫째 자의적인 권력 행사의 제한이라는 측면이다. 행정부가 법적 절차 없이 정치적·이념적 이유로 세금 면제 지위 박탈이나 연방 자금 동결을 위협하고 자의적으로 행정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면 마그나 카르타의 기본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제도적 자율성 보호라는 측면이다. 애초에 마그나 카르타는 귀족과 재산권에 관해 주로 다뤘지만 이후엔 계몽주의와 영미법 전통 가운데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제도적 자유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역사적으로 대학은 교회나 도시처럼 법인체로서 일정한 자유를 보장받는 기관이었다. 마그나 카르타가 교회와 런던시의 자치를 명시하며 이러한 자율성을 보호했다면 현대의 대학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셋째 법의 지배 원칙이다. 통치자의 독단적 선언이 아닌 법이 사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마그나 카르타의 정신은 미국 헌법의 근간이다. 만약 하버드대가 표현의 자유, 사상의 다양성 또는 학문적 독립성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연방 지원금이 중단되거나 세금 혜택이 박탈된다면 이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법치주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마그나 카르타의 유산에 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 자체가 미국 법에서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헌법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계승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개입해 적법 절차 없이 학문적 표현이나 제도적 자율성을 침해한다면 이는 대헌장과 그 법적 전통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위대한 문서가 작성되기 수십 세기 전, 모세는 대헌장의 원형이라 할 율법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왕은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 17:18~20)
모세의 율법이 가르친 바와 같이 왕이라 할지라도 법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이 이상은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 계승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 대헌장의 재발견은 정당한 절차와 자유의 원칙을 무시한 채 대학에 자의적으로 개입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하버드대의 입장에 한층 힘을 더해 줬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