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모든 복지 수요를 예산으로 감당할 순 없다

입력 2025-05-20 00:39

공적시스템으론 대응에 한계
틈새 메울 공동체의 역할 필요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좋은 예
요양보호사 접목 고려해볼 만

1960~70년대생 은퇴 시기가
선한 이웃 활용 제도 마련 적기
헌신하는 이 각별히 예우해야

연로하신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보면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적지 않다. 부모님 거주지가 사람들로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이라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산책 도중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껴 주저앉았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 경우도 그 중 하나다. 한 번은 119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는데 다행히 긴급 상황은 아니었다. 한숨을 돌린 후 부모님이 집에 데려다주면 좋겠다 했지만 구급대원들은 병원이 아닌 자택으로의 이송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콜택시 이용도 어려운 곳의 상황을 전달받으면 집에 모셔다줄 수 있는 이를 수소문할 때까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한두 시간만이라도 믿을 만한 누군가가 부모님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의 의료보험 체계는 훌륭하고 사회보장 시스템도 진일보했지만 개인의 복지 수요를 공적 시스템이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급격히 노령화되는 인구 구조를 감안하면 복지 수요를 국가나 지자체 예산으로 다 충당할 수도 없다. 이 틈새는 결국 개별적으로 메워야 하고 이 역할을 맡는 게 보통 가족이다. 하지만 그 역할을 맡을 가족이 주변에 없다면? 앞으로는 형제자매가 없고 가까운 친척조차 없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텐데 어떡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존재가 절실해진다.

정부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도입한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는 그 결과물 중 하나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사회복지공무원 인원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면이 넓은 이장과 통장, 아파트 관리직원, 집배원, 가스검침원 등을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하고 업무 중 복지 시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도입 초반 몇몇 긍정적 사례가 알려진 후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임명에 나서면서 그 숫자는 일반 사회복지공무원의 10배를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요즘은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도 퍽 다양해졌다. 사회복지 분야 전공 대학생이나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미용업 종사자, 공인중개사 등으로 자발적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학생에게는 활동 실적에 따른 봉사 시간을 인정해주고 우수활동자에게는 표창도 주어진다. 개인의 시간을 쪼개 헌신하는 데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지만 예산으로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요양보호사를 사회적 봉사와 접목시키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최근에는 가족을 직접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이들이 많은데 가족 돌봄 필요성이 사라지면 자격증 활용 동기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딴 자격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 보완과 홍보 노력을 기울이면 이들이 지역사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부모님 사례처럼 필요할 때 한두 시간 만이라도 노약자들의 안정과 이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요양보호사 본연의 역할은 노인복지시설 등에 등록된 이들이 맡되 비교적 간단한 돌봄을 봉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이들은 지자체가 관리하며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예산을 좀 투입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론 새로운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공적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운 분야도 확대될 것이다. 이에 대비해 자발적인 봉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체계를 정비하면 향후 대응할 방법을 찾기가 훨씬 용이해진다. 복지 수요의 일정 부분을 자발적 봉사로 감당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있어 골든타임은 지금이다. 가장 숫자가 많고, 현대적 교육을 경험한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60~1970년대생들이 은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사회적 의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특징을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려면 공동체에 헌신하는 이들을 사회적으로 예우하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모든 일엔 때가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선한 이웃의 힘으로 복지 수요를 일부라도 떠안을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