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타자 또.”
집라인을 타고 내려온 아이들은 약속한 듯 다시 줄을 섰다.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집라인에 몸을 실은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터치슬라이드와 암벽등반대 앞엔 대여섯 예닐곱 살의 꼬마 등반가들이 섰고, 서너 살 유아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소꿉놀이와 블록놀이를 즐겼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17일 방문한 ‘서울형 키즈카페 관악구 행운동점’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하얀색 벌집 모양의 LED 조명 아래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 등의 오색 시설물이 어우러진 공간은 방문객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관악구 에덴교회(엄태근 목사) 2층에 있는 이곳은 볼풀장과 낚시놀이 트램펄린 등 놀이시설을 갖췄다. 천장과 기둥 곳곳에 원숭이 나무늘보 코알라 개구리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지난달 28일 문을 연 서울형 키즈카페 행운동점은 교회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497.2㎡(약 150평) 규모로 조성됐다. 서울시와 관악구가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담하고, 교회는 10년간 공간을 무상 제공하는 조건으로 설립됐다. 3∼7세 아동을 위한 활동형 놀이 시설로 이용 요금은 2시간 기준 아이와 보호자 각각 2000원과 1000원이다. 자녀가 둘 이상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평일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가성비 가심비 다잡았다
“사설 키즈카페 가면 입장료만 기본 2만~3만원인데 여긴 반의반도 안 해요. 시설도 깨끗하고 쾌적해서 만족이에요.”
아들 최온유(3)군과 함께 이곳을 처음 찾은 안윤진(37)씨는 “구로구에 있는 서울형 키즈카페에도 간 적이 있는데 거긴 이용연령이 4세까지였다. 아들이 더 크고 나면 여기에 더 자주 올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관악구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남기모(37)씨는 4세와 6세인 두 아들과 함께 두 번째로 방문했다. 남씨는 “집에서 여기까지 차로 7분 거리”라며 “가까운 거리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키즈카페가 새로 생겨 좋다”고 반색했다. 그는 “맞벌이 부부라 주말엔 아이들과 집 밖에서 놀아주려 최대한 노력한다”며 “자녀가 둘이라 사설 키즈카페에 가면 6만~7만원은 우습게 쓰는데 여긴 무료라서 부담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오려고 한다”고 했다.
시설에 입장할 수 있는 정원은 이용 회차당 어린이 20명. 이날 시설은 오전 9시10분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단위로 4차례 운영됐는데 전 회차 예약이 마감된 상태였다. 평일엔 인근 어린이집에서 단체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키즈카페 운영을 책임지는 김혜란 센터장은 “동작구 강남구 용산구에서 오는 이용객들도 상당수”라며 “규모가 비교적 크고 새로 조성된 곳이란 입소문이 난 거로 아는데 주말엔 예약이 거의 100% 마감된다”고 말했다.
웃음소리 되찾은 다음세대
당초 교회 2층엔 에덴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저출산 여파로 2022년 문을 닫았다. 폐원 직전 남아 있는 아이들은 20명이 채 안 됐다. 설상가상 교회는 2023년까지 내홍을 겪으며 진통을 겪었다. 엄태근 목사가 부임한 2023년 말, 700석 규모의 본당엔 교인이 100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교회학교 역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엄 목사 부임과 함께 지난달 키즈카페 개관 이후 교회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다음세대가 사라진 자리에 지역 아이들이 찾는 공간이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달까지 텅 비어있던 유치부 예배실은 지난 11일 10명의 아이로 생기를 되찾았다. 엄 목사는 “교회 빈 곳을 활용해 지역 아이들을 환대할 수 있어 감사하다”면서도 “우리교회 아이들이 주일에 뛰어놀 공간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지역 아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할 때 지역뿐만 아니라 교회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며 “지자체와 협력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권했다. 이어 “교회는 하늘을 향해서도 세상을 향해서도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교회 건물과 시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것인 만큼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는 게 교회의 소명”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에 교회 공간을 나눌 교회들엔 “교회가 이기적으로 비치지 않도록 넉넉하게 양보하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엄 목사는 키즈카페 조성 과정에서 시공사가 바뀌고 공사가 지연됐지만 인내하며 대응했던 경험을 나누면서 “교회가 담을 낮출 때 하나님의 사랑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다. 세상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키즈카페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경험한 교회는 새로운 비전도 품게 됐다. 엄 목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지역의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센터도 설립하고 싶다”며 “지역 아이들을 더 돌보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이바지할 방안을 계속 모색하겠다”고 다짐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