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33) 신앙의 길 걷고 있다며 카페 찾아온 시아주버니 부부

입력 2025-05-20 03:07
강영애 목사가 서울 서대문구에서 들꽃카페를 시작하며 상징처럼 걸어둔 유화 그림. 강 목사는 세찬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는 들꽃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무엇에도 굴하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강 목사 제공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2021년 봄 한 노년 부부가 들꽃카페에 들어섰다. 남성은 나를 향해 “목사님,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자세히 보니 시아주버니였다. 그는 나를 ‘제수씨’라 부르지 않았다. 남편에게 쫓겨난 후 50여년 만의 첫 만남이었다.

시아주버니는 “저희 부부 이제 교회 다닙니다. 아내는 권사, 저는 집사가 됐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아 전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동생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오직 신앙 안에서만 이어졌다.

시아주버니는 “정환이네 가게에 들렀다 왔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자랐던지요. 세 남매를 잘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살아오며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끔 “하나님이 엄마를 훈련시키시려고 우리를 도구로 쓰셨고 아버지는 그 가운데 악역을 맡으신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삼각산에서 내려온 뒤 교회를 개척하고 무료야간진료소와 일곱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하면서 가정보다 성도를 우선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의 자녀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때마다 돕는 손길과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아이들은 은혜 안에서 잘 자랄 수 있었다.

첫째 아들 정환이는 대학을 마치고 서울 종로 무교동에서 큰 식당을 운영 중이다. 둘째 딸은 대학 졸업 후 신앙 좋은 직장인과 결혼했다. 독일 지사장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은퇴한 지금은 부부가 장로와 권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셋째 딸은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비서실을 통해 우리 가정을 살펴줬다. 딸의 유학 소식을 듣고는 나와 딸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셨다. 그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독일에 정치인 모씨가 있으니, 현지에서 도움을 받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장학생으로 가게 돼 학비와 기숙사비는 이미 해결됐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이제 대학생이 됐는데 화장품도 사고 옷도 사야죠”라고 세심히 챙겨주었다. 덕분에 아이는 독일에서 큰 어려움 없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독일을 방문했을 때였다. 식사 중 내가 “이거 별로 맛이 없네”라고 하자, 딸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삼각산에서는 우리 이런 것도 없었잖아요.”

“그랬지, 미안해.”

“삼각산 생활을 겪어봐서 지금이 전혀 어렵지 않아요.”

아이들에겐 지금도 검소한 삶이 몸에 배어 있다. 가끔 산기도에도 동행하는 둘째 딸은 현재 서울 종로에서 큰 학원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시아주버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 형제 넷이 각각 아들 하나씩을 뒀고, 그중 셋이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세 아들이 모두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집안 아들은 정환이만 남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 조용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왜 저 가정에 이토록 큰 시련을 허락하셨나요….’

들꽃카페를 떠나는 시아주버니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가정에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신앙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가게 해주세요.”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