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적용 까다로운 중증 천식… 악화 기다렸다가 약 쓰는 실정

입력 2025-05-20 00:00 수정 2025-05-20 00:00
천식은 기침과 가슴 답답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겪는 만성 기관지 염증질환이다. 염증 치료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중증으로 진행돼 증상 조절이 어렵고 사망 위험이 커진다. 게티이미지뱅크

40대 남성 A씨는 ‘중증 호산구성 천식’으로 몇 년째 치료받고 있다. 기침과 가슴 답답함, 숨쉬기 힘듦, 쌕쌕거림 등의 증상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 하면서 폐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직장은 휴직한 상태다. 요즘 치료약 사용과 관련해 고심이 크다. 천식 증상 조절을 위해 경구용(먹는) 스테로이드를 쓰면 부작용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최신 생물학적 신약은 약값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다.

천식은 흔한 만성 기관지 염증질환으로 가볍게 인식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염증 치료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폐 기능이 정상인보다 빨리 감소하고 심할 땐 발작적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더구나 A씨 같은 중증 천식은 증상 조절이 어렵고 사망 위험이 크다.

중증 천식, 질병 부담 커

이런 중증 천식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는 지난 15~17일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국내 중증 천식 치료의 여건 개선을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증증 천식에 효과적인 새로운 ‘생물학적 제제(바이오의약품)’의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 및 급여 기준 완화, 희귀질환 혹은 산정특례 지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최근 의료개혁 차원에서 진행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에 중증 천식이 상급병원 진료가 필요한 ‘전문진료질병군’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회에 따르면 국내 천식 환자의 약 10%가 중증 천식에 해당한다. 12세 이상 인구 중 조절되지 않는 중증 천식 환자는 2만3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호산구(알레르기 반응 시 증가하는 백혈구의 일종) 수치가 300을 넘는 ‘중증 천식’은 약 9000명으로 파악된다. 학회 보험이사인 정재원 인제대의대 교수는 19일 “전체 천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중증 천식의 질병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적극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증 천식 환자들의 사망 위험은 일반 인구 대비 2.35배 높다. 환자들의 삶의 질도 현저히 낮다. 폐기능 저하로 인한 신체활동 제약은 물론, 장기간 스테로이드 사용에 의한 부작용, 반복적인 악화 등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중증 천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 삶의 질 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9년 기준 연간 약 4조원으로 추산됐다.

생물학적 제제, 건보 적용 까다로워

중증 천식은 치료제가 마땅치 않아 감염, 골절 등의 합병증 우려가 큰 전신 스테로이드를 어쩔 수 없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량 경구 스테로이드 의존 천식 환자는 일반 천식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2.56배 높다. 다행히 근래 중증 천식에 효과적인 생물학적 제제가 여럿 도입돼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해당 약물은 연구를 통해 경구 스테로이드 투여 중단 혹은 용량 감소 등 의존성을 최대 72%까지 줄여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생물학적 제제의 신속한 사용으로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 다른 만성질환(류머티즘성 질환, 건선, 아토피피부염, 염증성 장 질환 등)과 달리 중증 천식에서 생물학적 약물의 건강보험 적용 및 급여 기준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11월부터 중증 호산구성 천식 치료에 레슬리주맙(싱케어)과 메폴리주맙(누칼라), 지난해 7월부터 벤라리주맙(파센라)의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모두 허가부터 급여까지 5~7년이 걸렸다. 두필루맙(듀피젠트)은 5년 넘게 급여가 미뤄지고 있다. 중증 알레르기성 천식 치료제 오말리주맙(졸레어)은 급여화에 무려 13년이 소요됐다.

일부 생물학적 제제의 급여화가 이뤄졌으나 중증 천식의 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환자들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생물학적 제제를 처방받게 되는데, 본인 일부부담 관련 규정 때문에 약제비의 60%를 내야 한다. 건보 적용을 받더라도 연간 최소 500만원 이상 든다. 비급여 약제인 경우 연간 10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생물학적 제제의 보험 적용 조건도 해외보다 까다롭다. 정 교수는 “혈중 호산구 수치, 기존 약물의 투여 조건, 악화 빈도 등 보험 급여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면서 “이 때문에 합병증과 스테로이드 치료에 의한 부작용을 겪기 전에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일찍 시작할 수 없으며 현재 급여 기준은 환자가 충분히 나빠지는 걸 기다렸다가 약을 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학회 이사장인 장안수 순천향의대 교수는 “중증 천식 환자는 다양한 특징으로 인해 한 가지 약제로 장기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어 치료 기전이 다른 생물학적 약제 간 교체 투여가 필요한데, 현재 교체 투여는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환자 특성에 따라 적절한 생물학적 제제를 선택해 투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증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 등 생물학적 제제 치료가 필요한 다른 중증·난치질환처럼 중증 호산구성 천식 역시 희귀질환 혹은 산정특례(본인 부담 5~10%) 대상으로 지정해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학회는 요구했다.

“상급병원 전문진료질병 포함돼야”

정부가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 역시 중증 천식의 치료 접근성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질환 중심의 진료 환경을 조성해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걸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천식의 경우 중증도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돼 있다. 학회는 “현재 진행되는 구조 전환은 중증 천식으로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해야 할 정도의 환자도 일반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되는 불합리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중증 천식의 진료 특성과 질병 부담, 심각성을 고려할 때 전문진료질병군에 포함해 상급병원에서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치료해야 한다. 현행 중증도 분류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