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율 파악·금연상담전화 운영
약제 무상 제공 정책 선도적 이행
담배 판촉 금지·환기 장치 설치는
WHO 요구 수준에 못 미치는 실정
약제 무상 제공 정책 선도적 이행
담배 판촉 금지·환기 장치 설치는
WHO 요구 수준에 못 미치는 실정
올해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발효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2005년 2월 발효된 FCTC에는 한국을 포함해 유엔 출범 이후 가장 많은 183개국이 참여 중이다. 당사국들은 FCTC(총 11장 38조)에 근거, 자국의 법·제도를 통한 이행 의무를 갖는다. FCTC 이후 한국의 담배규제와 금연정책은 어떤 성과를 거뒀을까. 지난 20년의 성적표와 향후 과제 및 방향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전담 하지 마.’
이달 초부터 지상파방송 3사의 주요 프로그램 사이에 송출되고 있는 금연광고 문구다. 유튜브와 SNS,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전국 스터디카페와 아파트 엘리베이터 옥외 광고에선 지난달 24일부터 전파를 타고 있다. ‘전자담배 (사용)'하지 마’라는 직접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청소년에게 ‘전자담배의 중독 위험을 전담(全擔)하지 말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금연광고는 2002년 폐암 선고를 받은 고(故) 이주일씨가 등장한 게 처음이었다. 그가 TV 광고에서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고 내뱉은 멘트는 전국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전까지 60%를 넘던 성인 남성 흡연율이 50% 초반까지 뚝 떨어졌다. 이후 정부는 매년 흡연 예방과 금연 독려를 기본 목표로 다양한 주제와 콘셉트의 금연광고를 선보였다. 2020년부터는 청소년의 흡연 노출을 경계하자는 ‘노담 캠페인’이 주목받았고 최근엔 전자담배의 위해성을 부각하는 금연광고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 금연 캠페인 추진은 WHO로부터 지난 10년간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는 동력이 됐다. WHO는 2008년부터 2년마다 발간하는 세계흡연실태 보고서를 통해 194개 회원국의 주요 담배규제 정책 이행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평가 보고는 2023년이었다. 오는 7월쯤 이후 상황을 반영한 새 보고서가 공개될 예정이다.
WHO, 7가지 정책 평가
19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금연학계에 따르면 WHO는 FCTC 규정을 기반으로 담배규제 및 금연 확산에 기본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7가지 정책을 ‘엠파워(MPOWER)’라는 세부 지표를 통해 각국의 현황을 분석한다. 7가지 분야는 담배 사용 및 정책 모니터링(Monitoring), 담배 연기로부터 보호(Protect), 금연지원서비스 제공(Offer help), 담배 위험성 경고(Warning)-건강경고 부착(W1) 및 금연 캠페인(W2), 담배 광고·판촉·후원 규제(Enforcement), 담뱃세 인상(Raise taxes)이다.
2023년 평가에서 한국은 모니터링(M)과 금연지원서비스(O), 금연 캠페인(W2) 등 3개 영역은 ‘우수’ 평가를 받았다. M 정책의 경우 보건당국은 국민영양조사, 지역사회건강조사, 청소년건강행태 조사 등을 통해 매년 성인과 청소년 흡연율을 파악하고 있는 점이 좋은 점수로 이어졌다. O 정책도 금연상담전화, 보건소 금연클리닉, 지역금연지원센터, 병·의원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금연 상담부터 금연 프로그램 운영, 치료를 위한 물품 및 약제까지 국가가 무상 제공하고 있어 선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W2 정책 역시 정부가 매년 국가금연홍보 콘텐츠를 기획해 TV·라디오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현장 캠페인을 통해 확산하고 지방자치단체·언론과 협업, 캠페인 질 제고를 위한 연구를 진행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M·O 정책은 평가 보고서가 처음 나온 2008년부터, W2 분야는 국내 자료가 제출된 2013년부터 쭉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담배 위험성 경고의 또 다른 부분인 건강경고 부착(W1)과 담뱃세 인상(R)은 ‘양호’ 수준에 머물렀다. W1 정책의 경우 담뱃갑 앞뒷면에 경고 그림과 문구가 50% 이상 차지한 것이 긍정적으로 반영됐지만 향후 ‘우수’로 상향되려면 모든 종류의 담뱃갑 외부 포장에 건강경고 표시, 경고 면적 확대, 보루 담배에 경고 표시, 광고 없는 표준 담뱃갑 포장(플레인 패키징) 등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R 영역에선 담배 소매 가격 대비 담뱃세의 비중이 73.9%로, WHO에서 우수 수준으로 요구하는 75% 이상에 못 미치고 있다.
십수 년째 ‘미흡’ 평가 이유는?
반면 금연 환경(P)과 광고 규제(E) 분야는 2008년 이후 십수 년째 ‘미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를 의미하는 P 정책의 경우 모든 공공장소의 완전 금연구역 지정이 우수 평가 기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민건강증진법에서 금연구역 내 실내 흡연실이 허용되는 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흡연실 설치 규정에서도 밀폐된 실내공간, 비흡연자가 다니지 않는 공간, 적절한 환기 장치 설치, 공기 배출 방법 등 WHO가 요구하는 구체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E 정책도 미비하다. FCTC 13조에 따라 모든 종류의 직·간접 담배 광고, 판촉 및 후원 활동을 금지해야 하는데 건강증진법, 담배사업법 등 관련 법령으로 담배 소매점, 잡지 등 인쇄물, 국제선 항공기 및 여객선에서의 담배 광고와 사회·문화·음악·체육 등 행사에서의 후원 행위를 허용(여성·청소년 대상 행사 후원만 금지)하고 있는 점이 낮게 평가됐다. 이와 관련해 회기별 국회의 입법 논의, 정부의 규제 추진, 전문가·시민사회의 문제 제기 등이 있었지만 소관 부처 및 관련 법령의 이원화, 담배업계 반발로 현행 법령의 제·개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입법이 지지부진한 사이 전자담배 등 새로운 담배제품이 지속 출시되고 SNS,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담배업계의 무분별한 마케팅이 가속화됨에 따라 규제의 사각지대는 커지는 실정이다.
더구나 2015년 담뱃값 2000원 인상, 금연치료 지원 서비스 실시, 2016년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등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금연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올해 7월 발표될 새 평가 보고서도 기존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근 몇 년 새 예산 삭감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일부 정책의 경우 평가 수준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강희원 연구교수는 “MPOWER 중 이행 수준이 매우 낮다고 평가되는 광고 금지나 금연구역 정책은 담배제품 사용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들, 즉 담배업계와 물리적 환경, 사회규범 등을 다루고 있어 개입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건강증진개발원 김길용 금연정책기획부장은 대한금연학회지 연구논문에서 “우리나라의 강점 강화와 미비점 개선을 위해선 담배규제 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 및 지원 활동에 적극 참여해 국내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