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폐아 판결, 믿음과 존중 회복 계기돼야

입력 2025-05-20 00:32

최근 한 유명 웹툰 작가의 자폐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관련 법정 다툼은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교사의 법적 책임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교육 현장의 신뢰 구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되돌아보게 했다.

지난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을 때, “학교 현장을 사제 간 신뢰의 공간이 아닌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학부모인 웹툰 작가도 1심 판결 후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들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의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교사와 학부모는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교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혹시 내 수업도 녹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사들을 옥죄었다.

항소심에서는 몰래 녹음된 증거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논쟁의 불씨는 남았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불신’이었다. 학부모는 혹시 내 아이가 소외되거나 방치될까 두렵고, 교사는 학부모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곡해할지 몰라 불안하다. 이런 불신은 결국 교육공동체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 학교 현장에서 ‘믿음’과 ‘존중’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기적인 교사-학부모 협의체를 법제화하고, 학생에 대한 관찰과 교육을 투명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장애 특성상 자기표현이 어려운 아동들을 위해서는 특별한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구성원의 동의를 전제로 CCTV 설치를 검토하되 무분별한 감시가 되지 않도록 열람 권한과 사용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학부모는 안심하고, 교사는 억울한 누명을 예방할 수 있다. 분쟁 발생 시 감정적 충돌이 아닌 제도적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

많은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낮은 사회적 인정 속에서 힘들어한다. 특히 특수교사는 단순히 수업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의 일상을 끌어안고 있다. 학생의 발달 단계와 장애에 맞춰 개별 지도안을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학생의 위기 행동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강한 말투를 쓰거나 물리적 제재를 가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교사의 정서적 소진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 이들을 위한 심리 상담, 법률 교육, 보조인력 확충 등 실질적 지원이 절실하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로 절박하다. 말로 표현이 어려운 아이, 이상 행동을 보이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가 교실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 수 없다. ‘몰래 녹음’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자리한다. 교사의 자율성과 권위를 존중하되 학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정보의 투명성과 정기적인 학부모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심에는 학생이 있다. 표현력이 부족한 장애 학생의 경우 정서적 학대는 그 자체로 입증이 어렵다. 아이가 더 이상 타인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와 환경이 필요하다.

감시와 불신의 악순환을 끊고 믿음과 존중의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제도 설계를 서둘러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은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아이의 삶을 책임지는 파트너다. 아이를 중심에 둔 ‘믿음과 존중의 학교’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김병주 (영남대 교수·학부모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