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코미디 쇼 ‘SNL 코리아’가 블랙코미디의 미학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SNL 코리아’가 시청자에게 사랑받았던 신랄한 정치 풍자는 힘을 잃고, 물의를 일으켜 활동하지 못했던 연예인들의 ‘이미지 세탁소’로 기능하는 등 프로그램이 지향했던 본질에서 멀어진 모습들을 보여주면서다.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의 한국 버전인 ‘SNL 코리아’는 지상파 프로그램에선 본 적 없던 신랄한 정치 풍자로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슈가 됐던 건 2012년 ‘여의도 텔레토비’였다. 국회의원들을 텔레토비에 빗대 그들의 언행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웃음과 통쾌함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송된 ‘SNL 코리아 시즌5’에서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호평받은 장면들도 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과잉 경호 논란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나 안철수, 김기현, 이준석, 한동훈에서 공통으로 연상되는 사자성어로 ‘토사구팽’을 언급하는 장면 등이다. 시즌6에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언행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치인들의 외피만 흉내 내거나 문제의 핵심이 되는 맥락을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볍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지원자로 등장해 ‘동덕여대 학생들과 학식 먹기’와 ‘명태균과 명태탕 먹기’ 중 무엇을 고르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복장과 분장, 말투를 따라 한 게 일례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18일 “풍자를 할 때는 현상이 아닌 맥락을 비판해야 한다. 성대모사만 하는 건 풍자가 아닌 희화화”라고 지적했다.
‘SNL 코리아’가 자숙 연예인들의 과오를 희석시키고 있는 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받고 있다. 최근 ‘SNL 코리아’에는 배우 서예지와 배성우가 호스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 연인 관계이던 배우 김정현에 대한 가스라이팅 의혹이 불거지며 활동을 중단했던 서예지는 최근 ‘SNL 코리아’에 등장해 가스라이팅을 ‘셀프 디스’하며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배성우는 오는 24일 공개되는 ‘SNL 코리아’ 8화에 등장을 예고했다. 배성우는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당시 출연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한 뒤 지난해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로 복귀했다.
이처럼 논란이 있었던 연예인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과오를 웃음으로 승화하고 연예계 활동을 재개하는 것에 대해 일부 대중은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고 연성화하는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부정적 의견이 많다면 성공한 시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SNL 코리아’가 일련의 비판을 받는 건 결국 화제성에 전도돼 본질을 잃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쿠팡플레이가 최근 풍자다운 풍자를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지점이 애매해진 것”이라며 “돈을 벌려면 화제를 끌어야 하니 ‘이미지 세탁소’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숙 연예인들의 복귀 통로가 된 것 아니겠나. 정치 풍자를 제대로 했으면 이런 식으로 이용됐겠나 싶다”고 말했다. 김교석 평론가는 “‘SNL 코리아’가 자신들만의 견해를 갖고, 외부의 평가에는 의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