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재판 헌법소원’ 등 법원을 겨냥한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법원은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 허용 법안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는 등 최고 사법기관 사이 해묵은 신경전이 재연될 조짐도 감지된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정진욱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헌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 기본권 보호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서를 지난 15일 국회에 냈다. 헌재법 68조 1항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빼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법원의 재판을 빼고’ 문구를 삭제하는 게 개정안 골자다. 다만 헌재는 지난 16일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개정안 시행 전 확정 판결에 대한 재판소원은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추가로 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은 파기환송심 등이 남은 만큼 개정안 시행 시점에 따라 재판소원 대상이 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재판소원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재가 오랜 기간 이견을 보인 주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현행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돼 헌법 규정에 반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최종 판결에 승복을 안 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며 “대법원 판결을 넘어 4심제가 열릴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헌재는 확정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헌재는 ‘문제 된 법률 조항을 A라고 법원이 해석하는 건 위헌이다’라는 형태의 한정위헌 결정을 통해 사실상 재판소원을 우회적으로 허용해왔다. 헌재는 1997년 한 차례, 2022년 두 차례 한정위헌 결정에 근거해 판결을 취소한 바 있지만 법원은 이에 따른 재심 청구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헌재 내부에서도 정밀한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제도 도입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무분별한 재판소원을 막을 장치와 폭증할 사건 관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헌법연구관은 “재판소원 대상을 확정 판결로 한정하는 식의 기준 없이 법원에서 나오는 모든 판결과 결정을 전부 가능하도록 허용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에선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30명 또는 100명 증원 법안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제청권자(대법원장)와 임명권자(대통령)가 시기적으로 분배돼 다양한 스펙트럼의 대법관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급격히 증원하면 늘어난 대법관 임명권을 차기 대통령이 독점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관은 “소규모 증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판사도 있지만 통일된 법 해석을 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사법부 코드인사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증원은 대법원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