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타락, 구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인간이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화와 계시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게끔 해주신다. 하나님 말씀은 역사나 자연을 통해서도 전달되지만 무엇보다도 ‘말씀의 집’인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성경의 구성은 창세기를 알파로 계시록을 오메가로 하고 있지만, 이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빛나는 보석들이 여럿 숨겨져 있다. 그 가운데 잠언만큼 우리에게 문학적 지혜를 선사하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서학에서도 잠언은 ‘지혜문학’으로 분류되고 있다.
잠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전해오던 교훈과 격언을 편집한 책이다. 그 안에는 삶의 지혜와 규범이 질서정연하게 기록되어 있다. 잠언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분별하고 무엇보다 그분을 경외하라는 메시지가 가득 펼쳐진다. 가장 기초가 되는 말씀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혜’가 현세적 지식이나 세속적 매뉴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을 뜻한다. 현세와 세속을 넘어서라는 데 무게중심을 두는 지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우선시하고 인간의 독립적 판단을 경고하면서 모든 존재자의 근원이자 궁극으로서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잠언의 중심은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는 데 있는데, 이는 신약의 요한복음에 나오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는 ‘로고스’설(說)을 벌써부터 예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일상에서의 지혜에 대한 예시가 풍부한 잠언은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道)를 단정하게 가르친다. 그것은 사랑, 순종, 겸손, ‘혀’의 경계, 하나님의 권위 인정으로 이어져간다. 이는 모두 지혜문학으로 수렴되는 하나님의 뜻을 품고 있다.
잠언의 발화 형식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2:6) 같은 짧은 경구나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16:16) 같은 비교 형식의 격언으로 나타난다. 결국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발원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며 모든 근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임을 잠언은 끊임없이 들려준다.
잠언이 드러내는 문학적 속성은 비교와 대조를 나타내는 표현뿐만 아니라 지혜를 주제로 하는 말씀의 완결성에 있다. 가령 지혜자는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1:6)라면서 잠언이 지혜의 보고임을 우리에게 알린다. 특별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는 말씀에서 ‘마음’은 우리가 중요하게 지켜야 할 핵심 범주로 각인된다. 그래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는 말씀이 더없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말씀도 문학도 결국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던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10:12)에서처럼 사랑을 강조하고,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10:28)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13:9)에서처럼 악을 멀리하고 의를 강조하는 건 예수님의 어법을 예언적으로 선취한 느낌을 준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12:23)와 같은 슬기로움을 강조하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라며 교만을 경계하는 것도 성경 전체의 지혜를 요약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으로서의 잠언은 인간의 경험적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구축된 신성한 결실이라는 이중의 속성을 거느린다. 우리는 잠언을 만나면서 실존적 각성과 윤리적 완성,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이라는 경험을 요청받는다. 그 어느 문학에서도 이러한 집중성과 다양성이 결속된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잠언은 사랑 겸손 윤리 소명 희생 의 구원 소망 등을 풍부하게 담으면서, 지금도 지혜를 찾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문학으로서의 잠언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축복이다. 지혜는 그렇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