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버스는 기억을 싣고 달린다. 독일 베를린에는 유대인 학살을 되새기는 메모리얼 투어 버스가 있고, 미국 남부엔 흑인 인권운동의 여정을 따라가는 프리덤 라이더스 재현버스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현장을 따라 운행하는 518번 시내버스가 있다. 투어 프로그램이 아닌, 매일 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정규 시내버스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518번 버스가 출발하는 상무지구는 1980년 5월 계엄군이 주둔하면서 시민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장소다. 버스는 5·18기념공원을 거쳐 항쟁의 중심 무대였던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을 지난다. 금남로는 시민과 계엄군이 격돌하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다. 전일빌딩245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 흔적이 남아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기록물을 보관하는 5·18기록관도 인근에 자리한다. 옛 전남도청은 시민군이 목숨을 걸고 최후 항쟁을 벌였던 장소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요 배경이 된 곳이다. 버스는 민주 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를 지난다.
이 버스는 2004년 민주묘지를 지나던 기존 25-2번을 광주시가 518번으로 바꾸면서 태동됐다. 광주시가 지정한 5·18사적지 29곳 중 14곳을 경유한다. 총 길이 33.4㎞, 편도 운행 120분에 달하는 긴 노선에 하루 10대가 투입돼 시민과 역사를 함께 실어 나른다.
올해 5·18은 또 한 번의 계엄을 겪은 후 첫 기념일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80년 광주 이후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계엄령, 그리고 대통령 탄핵. 이번에도 그때처럼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어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특별 영상에서 518번 버스가 소개됐다. 영상은 이 버스를 “단순한 노선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추모의 길이고 기억을 이어가는 길”이라 표현했다. 대선을 보름여 앞둔 지금, 항쟁의 길 위를 달리는 518번 버스를 보며 오월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