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공정 이용” vs 창작자 “시장 파괴”

입력 2025-05-18 18:56 수정 2025-05-19 00:29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데이터 무단 학습으로 인한 저작권 소송이 각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빅테크들은 사회적·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AI의 데이터 학습이 저작물 일부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창작자들은 정당한 대가 없는 AI 학습이 예술·창작 시장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 AI 모델의 뉴스 콘텐츠 무단 학습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심사에 착수하면서 AI 학습을 둘러싼 저작권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18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서 유명 작가 12명이 메타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사건의 재판이 열렸다. 작가들은 메타가 AI 훈련에 각종 전자책과 논문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AI가 학습한 작품에 대한 정당한 저작권 비용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메타가 저작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불법으로 복제된 출판물을 이용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메타는 “AI 학습에 데이터를 활용한 것은 공익적 가치가 있으므로 공정 이용 범주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해당 재판부는 메타의 공정 이용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재판은 1심으로 최종 판결은 아니지만 재판을 담당한 빈스 차브리아 판사는 메타의 행위가 작품 시장을 파괴하고 원작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면서 자사의 AI 모델 훈련을 목적으로 저작물을 무단 학습시키는 빅테크의 관행을 비판했다. 최근 빅테크를 상대로 창작자들의 저작권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번 재판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앞서 영국에서도 문화·예술·언론계 인사 400여명이 테크 기업들의 AI 모델로부터 창작물 저작권을 보호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테크산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 온 ‘데이터 (사용 및 접근) 법안’이 통과되면 저작권 침해가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크 기업이 AI 모델에 음악이나 서적, 영화, 신문 등을 사용할 때 저작권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법에 명확히 적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신문협회가 지난달 네이버를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했다. 협회는 네이버가 자사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와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운영하는 과정에서 언론사의 핵심 자산인 뉴스 콘텐츠를 무단 학습했고, 관련 학습 데이터 내역 공개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생성형 AI 검색 서비스에서도 뉴스 콘텐츠를 부당하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정지우 저작권법 전문 변호사는 “언론인들이 뉴스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취재 방식을 활용하고, 전달 과정에서 본인만의 창의적인 표현을 쓰기 때문에 뉴스 콘텐츠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며 “최소한 저작권자가 AI 학습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에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워드
공정 이용(Fair Use)

미국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자 허락이 없더라도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교육·연구·보도처럼 사회적·공익적 가치가 인정되는 경우, 저작물 일부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