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역할 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잇따르고 있다. 마이클 디솜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명자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동맹국에 대만에 대한 지원을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 현지 주둔 미군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도록 하겠다는 의중이담겼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은 더 노골적이다. 그는 하와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 “주한미군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대선에 정신 없을 때 동아시아 안보 상황의 급변이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물론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미국이 한국에 지상군을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언급하던 ‘주한미군 철수’ 같은 과격한 현상 변경과 선을 그은 것이긴 하다. 하지만 주한미군을 중국의 대만 침공 등에도 투입할 수 있다는 식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에 대해 한국을 담당하는 부처 인사들이 동시에(현지시간 15일) 언급한 건 심상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차기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역할 조정에 대한 신호를 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대한 대한민국 방어가 기본 임무다. 역할을 조정하려면 우리 의사가 반영돼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의 국론 분열을 부르고 안보 불안정성을 높여선 곤란하다. 미국도 이를 인식해야 한다. 다만 우리 역시 안보와 경제 면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한·미 동맹의 공고함이란 점을 간과할 순 없다. 미 측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의지가 확인된 만큼 우리도 어느 정도로 미국과 안보 문제를 협력할 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중요하다. 지지율 1위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중국하고 대만이 싸우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며 아직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 안보 및 경제는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핵 잠재력 강화 등 추상적 방안만 내놓고 있다. 안보 공백이 생길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국익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해 정치권이 서둘러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