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윤석열의 족쇄

입력 2025-05-19 00:38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며 단결을 말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백의종군하겠다며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계엄이나 탄핵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대신 자신이 김문수 후보 못지않게 대선 승리를 열망하고 있으며, 탈당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 말을 듣고 당이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게 됐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1호 당원 윤석열’의 잔상은 이미 당과 김 후보 캠프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계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비정상적 폭력’이라고 했던 인사와 ‘계몽령’이라는 논리를 설파한 주역이 함께 서 있다. ‘찬탄’은 배신이라고 목소리 높였던 인사는 이제 찬탄파에게 왜 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김 후보가 말한 ‘쇳물을 녹일 정도의 용광로 선대위’는 이렇게 이질적인 존재들의 연합체가 되었다. 문제의 근원을 덮어두고 ‘타도 이재명’만 내세우다 보니 실체나 비전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정당사에 전례 없는 후보 교체 시도의 복마전 중심에도 윤 전 대통령이 있었다. 어떤 이는 절박감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거대 악이 모든 걸 손에 쥐게 생겼으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단 1%라도 확장 가능성이 더 있는 사람을 뽑으려 했었고,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강변도 나온다. 한 인사는 정치적 은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밤 촌극 끝에 겨우 닻을 올린 캠프는 3주 남짓한 선거운동의 3분의 1을 윤석열이라는 족쇄를 푸느냐 마느냐로 허비했다. 국민 대다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 본인들 스스로 채운 사슬이다. 당무우선권을 쥔 대선 주자는 머뭇거렸고, 윤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만 기다렸다. 지난해 12월 국회 탄핵소추 때, 적어도 지난 1월 구속 기소 때, 늦어도 지난 4월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때 매듭지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당은 구치소와 관저, 사저를 따라 찾아다니며 족쇄를 더 단단히 죄어 왔다. 30년 당을 지켰던 인사가 ‘파이널 자폭’이라고 조소한 일련의 일들 바닥에서 명분 잃은 정치의 한계도 보인다. “대법원장을 탄핵하고 법원을 겁박하는 게 일당독재 아니냐”는 외침은 충분히 공감을 살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임은 갔지만 국민의힘은 보내지 못했고, 임은 침묵하지도 않는다.

지금 김 후보 지지율은 당의 1차 경선 후보 4명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선호도의 합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주자만 정해지면 지지율이 결집하고 상승해서 해볼 만한 구도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이었다. 정치적 비상식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야구 유니폼을 선거운동복으로 맞춰 입은 국민의힘은 9회 말 2아웃 역전 만루 홈런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탈당을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며 첫 번째 카드의 효과를 반감시켰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가운데 보수와 진보, 중도층이 30%씩 분포한다. 현재의 지지율 부진은 보수의 지형이 쪼그라들어서가 아니라 보수의 정치가 방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대선을 피해 하와이로 망명을 갔다는 인사는 “지더라도 명분 있게 져야 다시 일어설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생즉사 사즉생’이 뜻하는 바도 같은 말일 것이다. 진정한 보수의 재건은 낡은 구호나 정치공학이 아니라,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