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성장 지켜보며 함께 자라는 보람

입력 2025-05-20 00:00

소아청소년과는 모든 진료과 중 유일하게 ‘나이’로 구분되는 과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만 18세까지가 진료 대상이기 때문에 특정 장기나 질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화기, 호흡기, 감염, 순환기, 내분비 등 전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진료해야 한다. 같은 폐렴이라도 신생아와 10대 청소년은 증상과 경과에서 차이가 있다. 나이에 따라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종일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면 피곤할 틈도 없이 다양한 감정이 오간다. 진료 당시 황달로 내원한 생후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는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채 부모 품에 안겨 들어왔다. 부모는 작은 몸짓 하나에도 불안해하며 질문을 쏟아냈지만, 황달 수치가 괜찮다는 말을 듣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하는 일이 이 가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반면 중고등학생들은 소아청소년 병원에 오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감기처럼 경미한 질환으로 부모 손에 이끌려 온 경우엔 시큰둥한 표정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한 번은 고2 남학생이 복통으로 내원하면서 “저 이제 소아과 말고 내과 가야 하지 않나요”라며 배를 쑥 내밀었다. 그럴 때 나는 웃으며 말한다. “덩치는 커도 선생님 눈엔 아직 애기인데?” 아이는 그제야 배시시 웃는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청소년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특별한 감동이다.

소아청소년과 진료는 아이뿐 아니라 보호자와의 신뢰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 셋 모두를 이 병원에서 키웠고 이제 본인의 건강 문제로도 가끔 함께 진료받으러 온다. “애들을 잘 봐주셔서 저도 선생님 약이 잘 듣나 봐요”라며 웃으실 때 그 신뢰의 가치를 느낀다.

단지 질병만 보는 의사가 아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반자로서의 소아청소년과 의사.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며 청진기를 대고 때로는 성장 고민을 나누고 진로 이야기도 듣는다.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아이와 가족, 그리고 의사인 나 자신도 함께 자란다. 오늘도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은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소리, 보호자의 걱정과 안도, 의사의 책임감과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