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면 함께 시공부를 했던 이들에게서 문자가 오고, 나는 답장을 보낸다. 오래전 내 모습을 기억해주는 말, 날이 날이니만큼 생각이 났다는 말, 자랑하고 싶은 소식을 들려주는 말, 전화에 대고 노래를 불러주는 이, 내 시를 필사해 인증샷을 보태는 말, 그 시절이 그립다는 말…. 이들 덕분에 나는 내가 괜찮은 스승이었다는 착각을 잠시 해보면서 즐거운 마음이 된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 속 나에게 존경을 표해준다.
나에게도 스승이 있어서 그립다는 말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자, 몇 해 전부터 겨우 연락이 닿기 시작한 스승 한 분이 뒤늦게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 스승이다. 가정집에서 개인 레슨을 해주셨는데, 나의 스승은 언제나 밝고 명랑하셨고 잘 웃으셨다. 늘 칭찬을 넘치게 받았다. 피아노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깡충깡충 뛰면서 집에 올 수 있게 해주셨다. 피아노 레슨뿐만 아니라 베토벤, 바흐, 쇼팽 등 우리가 연주하는 그 곡의 창작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자세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실감 나고 다정하게 들려주셨다. 최근에 재회하게 되었을 때에도 변함이 없으셨다.
내게도 안부를 여쭐 스승이 계셨다는 사실을 왜 잊었을까. 내가 피아노를 잊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잘 배워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덕분에, 스승의 날에 건네받은 안부들 덕분에 나는 어제 동네의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다. 내 손이 건반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의 스승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 시절이 더 자세히 기억날 것이다. 그 시절에 받았던 사랑 역시도. 늦었지만, 나의 스승에게 안부를 건넸다. 스승은 한결같이 자애롭고 명랑하셨다. 나는 잠깐 그 시절의 아이가 되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