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개전 3년여 만의 휴전 협상을 위해 튀르키예에 도착했으나 회담 시작 전부터 거친 신경전을 벌였다. 관심을 모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직접 담판은 불발됐다. 러시아가 체급이 낮은 대표단을 파견하면서 협상 성과에 대한 기대는 한층 낮아졌다.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대표단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도 앙카라에 도착했다. 젤렌스키는 푸틴 대통령이 빠진 러시아 대표단이 장식적인 수준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러시아 대표단이 어떤 급이고 어떤 권한을 가졌는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누가 장식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나. 광대? 패배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젤렌스키를 공격했다. 러시아 측은 또 자국 대표단은 이스탄불에서 진지한 작업을 할 준비가 돼 있는데 우크라이나 측이 협상에 관해 “쇼를 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이날 회담은 늦은 오후까지 열리지 못했다.
앞서 푸틴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우크라이나에 “15일 이스탄불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젤렌스키는 즉각 수락한 뒤 ‘정상 간 대면’을 역제안했으나 푸틴은 응하지 않았다. 푸틴은 14일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보좌관을 단장으로 협상 대표단을 구성하는 명령에 서명하면서 자신의 불참을 예고했다.
메딘스키는 전쟁 초기인 2022년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에서도 러시아 대표단을 이끈 인물이다. 그 전까지 고위직 이력은 8년간의 문화장관이 유일하다. 푸틴이 외교·국방 고위직 인사가 아닌 메딘스키를 단장으로 보낸 것을 두고 주요 외신들은 “협상 전망이 어두워졌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젤렌스키와 대면을 거부한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하급 관리들을 협상에 파견했다”며 “서방 외교관들은 푸틴이 양보할 뜻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강경한 태도로 밀어붙이는 근저에는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을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전용기)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푸틴과 내가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튀르키예에서의 외교적 진전 가능성을 더욱 약화시키는 발언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