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업계의 내우외환이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배터리 셀 업체들은 가동률 급락과 소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해 있다. 전방 시장인 전기차 산업의 부진이 실적 악화의 근본 원인이다. 기업들은 유휴 설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 제품 및 고객사를 유연하게 바꾸는 등 위기 돌파에 주력하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1분기 국내외 공장 평균 가동률은 43.6%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87.7%) 대비 절반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한국 미국 중국 폴란드 등 전체 공장의 평균 가동률도 2023년 69.3%, 지난해 57.8%, 올해 1분기 51.1%로 2년 새 18.2%포인트 하락했다.
중대형 전지 가동률을 공개하지 않는 삼성SDI도 구조적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 부문 매출은 2조980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4.9%, 전 분기 대비 16.4% 줄었다. 배터리 부문 영업손실은 4524억원에 달했다. 삼성SDI 측은 “완성차 업체들이 기존 재고 소진에 집중하면서 신규 발주가 지연돼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설명했다.
공장이 멈추고 수익이 급감하는 직접적 원인은 전기차 판매 부진이다. 배터리 기업들이 납품 물량과 공급 기간을 완성차 업체와 사전에 정하더라도,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판매 부진을 이유로 발주량을 줄이면 이는 배터리 공장 가동률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예고한 수요를 기반으로 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충했는데 예상보다 수요가 줄면서 공장이 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SK온은 미국 공장 일부 라인을 포드·폭스바겐용에서 현대자동차용으로 전환하는 등 고객사별 수요에 따라 생산라인을 유연하게 배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일부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전환해 가동률을 높이려 한다.
계속해서 하락하는 배터리 소재 가격도 부담이다. 셀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에 따라 배터리 납품 단가를 연동해 조정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소재 가격 하락기에는 고가에 확보한 원재료로 만든 제품을 낮은 시세에 판매하면서 재고 손실이 발생한다. SK온이 구매한 양극재 단가는 2023년 1분기 kg당 5만4311원에서 올해 1분기 2만9173원으로 46% 하락했고, 삼성SDI가 공개한 양극활물질 단가도 같은 기간 49.60달러에서 29.37달러로 41% 낮아졌다.
셀 업체에 삼원계 배터리용 양극재를 주로 납품하는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시장 점유율 확대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제품 가격 하락까지 만났다.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LFP용 소재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가운데 기존 사업에서의 어려움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미래 투자를 위한 자금 수혈이 업계 공통의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