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중동 특수’… 한국도 덕 보나

입력 2025-05-15 18:34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는 미국 정부의 산업 규제가 시시각각 변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반도체 업계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 등은 미 당국이 올 초부터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의 고삐를 조이면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지만, 수십조 원 규모의 중동 시장이 열리면서 사업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 기업의 인공지능(AI) 칩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반도체 업계도 덩달아 반사이익을 누릴 전망이다.

1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아랍에미리트(UAE)가 매년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 50만개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1차 계약을 이날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이지만 2030년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미국 AI 칩 수백만개가 UAE에 공급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엔비디아가 매년 AI 칩 10만개를 UAE의 기술 기업 G42에 제공하고, 나머지 물량은 UAE 내 데이터센터 건설에 참여하는 미국 기업들에 분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AMD 또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하는 AI 기업 휴메인과 ‘사우디에서 미국에 이르는’ 지역에 AI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MD와 휴메인은 100억달러(약 13조 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해 향후 5년간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앞서 중동을 순방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6000억 달러(약 85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맺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협정에 에너지, 국방, 자원 분야의 협의 내용과 더불어 미국 기업의 AI 칩 대량 공급 내용을 담았다. ‘국가 전략 AI 강국 2031’ 비전을 추진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AI 칩을 외교적 협상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수출 규제로 막대한 손실을 보았던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용 저성능 칩인 H20을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올해 1분기에만 8조 원 가량의 손실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는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그래픽처리장치(GPU) 제품 가격을 최대 25%까지 전격 인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방문으로 관련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됐다.

이번 미국과 중동 국가들 간 계약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매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등은 AI 칩의 필수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UAE 수출을 위한 AI 칩이 매년 수십만 개 생산된다는 건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포함해반도체 시장 전체가 커진다는 뜻”이라며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업 모두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