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트럼프의 ‘컨시드’

입력 2025-05-16 00:40

초보 골퍼들은 홀을 마칠 때 홀컵에 자신의 공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드물다. 실력이 처져 동반자들이 홀컵에 공이 가깝게 붙으면 퍼트 성공을 의미하는 “오케이(공식 명칭 ‘컨시드’)”를 외치고 다음 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공식 룰이 아니어서 컨시드 거리 결정은 엿장수 맘대로다.

프로 대회에서 컨시드가 용인되는 건 홀마다 승패를 가리는 매치플레이뿐인데 감정싸움이 적잖다. 2015년 미국과 유럽의 여자골프 대항전(솔하임컵)에서 45㎝ 거리의 퍼팅을 남겨둔 미국 선수가 공을 들었다. 같은 조 유럽 선수가 컨시드를 준 적이 없다고 항의해 벌타를 먹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팀이 똘똘 뭉쳐 끝내 역전승을 거뒀다. 골프계에서 ‘김미(gimme, 컨시드의 또 다른 표현)게이트’로 회자되는 사례다. 2017년 US 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선 ‘15㎝ 컨시드’를 주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어쨌든 컨시드는 편법이다. 그런데 핸디캡 2.8(파 72코스에서 평균 74.8타)의 수준급 골퍼가 컨시드를 밥 먹듯이 한다면? 주인공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와 골프를 친 전 프로복싱 챔피언 오스카 델라 호야의 말. “파3홀에서 트럼프가 티샷을 OB구역으로 날렸다. 그런데 그린으로 올라가더니 ‘정말 잘 붙었네’라고 소리쳤다. (트럼프가 몰래 갖다 놓은) 공이 홀 1m 앞에 있었는데 트럼프가 ‘뭐해, 컨시드 줘야지’라고 했다.” 트럼프는 2.5m 퍼트, 그린 밖에 놓인 볼도 자체 컨시드를 외치곤 했다(‘커맨더 인 치트’).

골프에선 웃어 넘길 컨시드를 트럼프는 외교로도 끌고 갔다. 중동 순방 중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카타르 왕실이 4억 달러(약 5600억원)짜리 항공기를 선물하기로 하자 뇌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트럼프는 “누가 컨시드(항공기)를 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공을 들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멍청한 사람”이라고 반박했다. 컨시드의 속성은 ‘받고 싶은’ 거리는 길고, ‘줘야 할’ 거리는 짧은 것이다. 새 정부와 협상할 트럼프 행정부가 요상한 컨시드 원칙을 강요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