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 플랫폼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남성이 땀을 흘리는 가운데 바퀴를 굴리며 스크린 도어 앞에 멈춰섰다. 몇 분 뒤 열차가 도착하고 이 남성이 지하철을 타려고 했지만, 플랫폼과 열차 사이 높낮이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탑승이 힘들어 보였다. 이를 본 두 명의 성인 남성이 내려와 도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장애인 남성은 “나는 괜찮다. 나 때문에 지하철을 놓치면 안 되니 얼른 타시라”고 조용히 말했다. 도와주던 이들은 미안함을 표하며 열차에 올랐고, 문이 닫히는 순간의 찰나에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허탈해하는 남성의 씁쓸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다음 열차를 탔는지, 아니면 몇 대를 더 보내야 했는지는 모른다.
지난달 다녀온 일본 출장이 떠올랐다. 서울 강남교회 장애인 성도들의 일본 비전트립에 동행했다. ‘전지적 장애인 시점’에서 다녀온 일본은 한국과 사뭇 대조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은 장애인에게 친절한 나라라는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다.
일본의 경우 버스 기사와 지하철 역무원이 장애인 승객에게 먼저 다가가 친절하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승객의 탑승을 위해 흔쾌히 버스에서 내려 리프트를 내려주고, 최소 두 명의 역무원이 에스컬레이터 이용부터 열차 탑승까지 세심하게 지원했다. 그들의 표정엔 피곤함이나 귀찮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배려와 존중이 묻어 있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두 나라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통계에서도 두 국가의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은 장애인 복지와 대중교통 접근성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통계 수치와 정책 실행력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등록 장애인 수는 263만1356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를 차지한다. 장애 유형은 지체장애(43.0%)가 가장 많다. 일본의 장애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7.6%(935만5864명)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을 위한 배리어프리 정책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서울의 저상버스 보급률이 57.8%에 달하지만, 충남(10%) 전남(11.5%) 등 지역별 격차가 크다.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계획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이나 여성 거주지역의 접근성은 미흡하다. 반면 일본은 2000년 배리어프리법 제정 이후 체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2025년까지 철도 차량 70%, 저상버스 80%, 유니버설 택시(누구나 차별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택시) 25%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14~2023년 사이 대중교통 접근성이 89% 개선됐다. 역무원 지원 시스템도 정착돼 장애인의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한국은 수십년간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에서 만난 장애인 남성의 그 표정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장애인식 개선은 법과 제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인프라를 넘어 우리 마음에서 시작된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눅 14:13~14) 성경의 가르침처럼 약한 자와 함께하라는 명령은 단순한 동정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실천적 사랑이다. 기독교가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닐까.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