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는 줄어들고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선생하기’ 어려운 시대 라고들 한다.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도 함께 줄어 간다. 교회 안 사정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어린이부터 청년까지 다음세대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교회 주일학교도 축소되고 있다. 어린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 이상으로 주일학교 교사 구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수십년째 사랑과 기도로 아이들 곁을 지켜온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들 영혼을 품고 말씀과 기도로 신앙의 길을 세워 온 주일학교 교사들은 “아이들을 섬기는 게 사명이고 큰 기쁨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선생님들과 그들 덕에 ‘하나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제자들의 고백은 여전히 희망이 된다.
34년째 아동부 사랑…“소명이자 은혜”
경기도 성남 동문교회(장천재 목사) 임채란(64) 권사는 34년째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다. 과거 서울에 있던 상가교회가 1997년 현재 위치에 있는 교회로 합병·이전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임 권사는 줄곧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다.
아동부 학생들이 커서 중·고등부에 올라가고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들이 자라 또 교회학교 일원이 됐다. A씨(43)도 임 권사가 그 세월을 모두 지켜본 ‘아이’다.
“권사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아동부 선생님이에요. 권사님표 떡볶이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달란트 시장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제 아들이 아동부에 가서도 그 떡볶이를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다시 제 아이의 선생님이 되신 거죠.”
A씨가 아동부 교사를 했던 대학생 시절, 임 권사는 선생님에서 선배가 됐다. A씨는 “그 시절 권사님은 좋은 교사 선배이자 신앙 선배였다”고 고백했다.
“대학생이 되니 여러 일로 바빠지고 자연스레 교사 일이 점점 버거웠어요. 세상일과 교회 활동 사이 내적 갈등이 커지고 힘들어졌죠. 고민을 털어놓자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손만 먼저 놓지 마. 그거면 돼.’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서 많은 순간 제게 위로와 힘이 됐어요.”
긴 세월 한 자리를 지켜 온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젊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동부 섬기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며 15여년 전 잠시 중고등부 교사를 맡아야 해 아동부를 떠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교회에서 아동부 아이들을 마주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동부가 그립더라”며 “돌아보니 아동부가 내 소명이고 은혜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춘기 제자들을 향한 ‘짝사랑’ 30년
“박찬호 선생님은 제 신앙의 방향을 잡아주신 분이에요. 선생님을 통해 금식기도를 배우고 방언도 받았습니다.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분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직할성전 유치부의 강혜경(42) 전도사는 30여년 전 중등부에서 만난 선생님을 이렇게 추억했다.
그런 강 전도사는 선생님 박찬호(58) 집사에게 여전히 제자였다. 지난 11일 서울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집사는 “어릴 적부터 믿음이 깊고 당찼던 아이가 이제는 사역자가 돼 다음세대를 이끌고 있는 걸 보니 교사로서의 시간이 의미 있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박 집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30년째 중3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취업준비생 시절 “직장은 하나님이 예비하실 테니 봉사부터 하라”는 전도사님의 권면에 따라 중등부 보조교사로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주중에는 고등학교 물리 교사, 주일엔 주일학교 교사로 30년 경력을 쌓은 박 집사지만 “지금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고 더 잘 소통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94년만 해도 중3 학생이 1000명, 교사는 100명도 넘었어요. 지금은 학생 수가 160명대로 줄고, 대면을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이라 심방도 조심스럽죠. 전화나 카톡 답도 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이 공감표시 하트 하나만 찍어도 ‘마음이 열린 걸까’ 기대하는 게 교사들이죠.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어요.”
교사로서 보람된 순간은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다. 박 집사는 “아이 한 명의 신앙이 자라기까지 많은 기도와 인내가 필요한데, 교사의 작은 헌신도 믿음의 흔적으로 남는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박 집사가 가르친 제자 중 일부는 소식이 끊겼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 손만은 놓지 않기를 기도한다.
“얘들아 잘 지내니, 많이 보고 싶구나. 선생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교사로 섬기고 있어. 너희를 위한 기도는 변함없단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만은 놓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영아부 은사에서 찾은 사명
“선생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대요.” 화평교회(김정민 목사) 이광희(64) 집사는 아이들이 작은 입술로 전하는 순수한 신앙고백에 이끌려 20년 넘게 영아부(0~4세) 교사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제자훈련 중 ‘은사에는 사명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영아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느끼게 됐어요.”
말이 서툰 아이들은 반복되는 찬양과 율동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익혀간다. 이 집사는 “어린 시절의 예배 경험이 평생 신앙의 기초가 된다”면서 “유치부로 올라간 아이들이 예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 안에 일하고 계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 집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지금은 군 입대를 앞둔 ‘정호’를 떠올렸다. 정호는 영아부 시절 “선생님 제가 커서 꽃반지 사줄게요”라며 웃던 제자로, 믿음 안에서 잘 자라 교사로서 큰 보람을 주었다.
40년 교사생활, 참 행복했습니다
대구 대일교회(오세경 목사)의 안순자(66) 권사는 홀로 믿음 생활을 하거나 가정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에게 반찬을 해주고 꼭 안아주는 ‘교회 엄마’였다.
그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주일학교 교사가 삶 속 일순위였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에게 3년 전 이 교회 초등부 전도사에 과거 초등부 제자였던 구하은(29) 전도사가 부임해 온 건 선물 같은 일이었다. 안 권사는 “‘수고했다’며 하나님이 큰 열매로 축복을 주신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구 전도사 역시 안 권사 모습이 ‘서프라이즈’였다. 구 전도사는 “제 선생님이 여전히 열정적으로 교사를 하시는 모습에 놀랐다. 아이들에게 ‘전도사님의 선생님이셨어’라고 늘 말할 정도로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안 권사는 지난해 12월, 40년 넘게 이어온 주일학교 교사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한동안 교회에 가면 마음이 저려 아이들 예배실 쪽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수많은 주일학교 교사들을 향해 하나님이 함께하시길 기도한다며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4살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살며 참 행복했습니다. 귀하고 예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 자체가 은혜였죠. 맡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매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실 거예요. 제게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박효진 신은정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