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이라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4일 전망했다. 지난 2월 전망치(1.6%)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일부 해외 투자은행(IB)을 제외한 국내외 주요 기관 가운데 ‘0%대 성장’을 전망한 건 KDI가 처음이다. 건설업 불황과 소비 위축, 미국 관세 충격의 삼중고가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KDI는 이날 ‘2025년 상반기 경제 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는 건설업 부진과 통상 여건 악화로 0.8% 성장에 그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1.0%, 아시아개발은행(ADB) 1.5% 전망보다 낮은 수치다. 0.8% 성장이 실제 나타난다면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0.7%) 이후 5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성장률 하향 조정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관세 인상”이라며 “정국 불안도 예상보다 늦게 해소되며 소비자 심리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KDI는 극심한 부진에 빠진 내수와 건설업에 대해 “가시적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올해 민간 소비는 1.1% 증가에 그치며 전년과 비슷하게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 투자는 지난해(-3.0%)에 이어 올해(-4.2%) 감소 폭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도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의 부진과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올해 총수출이 0.3% 증가에 그치고, 상품 수출은 역성장(-0.4%)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KDI는 이번 전망이 미국의 기본 관세(10%)와 철강·자동차(25%) 등 품목별 관세가 유지되고 국가별 상호 관세는 유예되는 걸 전제로 한 결과라고 했다. 정 실장은 “만약 자동차 관세나 기본 관세가 낮아진다면 (올해 성장률이) 0.8%보다 높아질 수 있지만 전자제품 등에 관세가 부과되거나 상호 관세가 제도화된다면 전망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관세 협상을 잘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KDI는 경기 둔화를 감안해 거시경제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화정책에 대해선 “지난해 두 차례, 올해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했지만 경기 상황을 보면 올해 추가 인하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재정정책에 대해선 “큰 폭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감안하면 이미 상당히 완화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추가 재정 지출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