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을 시작하는 지인들이 생겨난다. 100세 시대의 앞날을 40대부터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들도 있고, 사업을 키우기 위해 자그마한 가게에서 이런저런 진지한 시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자영업이 어렵다는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지는데, 이렇게 첫발을 딛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잘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났다는 불안, 떠나온 곳에 대해 이따금 밀려드는 미련, 손에 익지 않은 일에 적응하느라 겪는 긴장감 등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안 초보 사장의 마음에 들락거린다. 가게 문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들이닥치는 불청객까지 감당하자니,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인생사를 실감하는 날들이리라. 그렇게 짐작했다.
초보 사장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걱정과 불안, 미련과 긴장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맛도 모양도 유독 잘 나온 에그타르트를 완성하거나, 어제보다 잘 빚어진 냉면 메밀 반죽 같은 것을 보며 희열에 가까운 성취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끓여낸 육수에서 깊은 맛을 확인했을 때나, 적절한 산미를 고민하던 끝에 딱 맞는 원두를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 같은 것도 크다고 한다. 어떤 업종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든 자영업자의 성공과 성취감이 ‘돈’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그뿐이랴. 손님들과의 교류에서도 좋은 에너지를 얻는다. 다소 수줍게 손님을 맞이하며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초보 사장의 표정엔 반가움과 고마움이 담겨 있다. 손님들과 주고받는 스몰토크나 소소한 해프닝은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카페를 차린 지 몇 달 안 된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하나가 재밌다. “작고 유명하지 않은 카페인데 어떻게 찾아오셨는지요.” 초보 사장이 묻자 이런 답이 나왔다고 한다. “리뷰 사진에서 살짝 보인 사장님이 장발이라서요.” 맛집 사장은 장발 아니면 삭발이더라며, 길게 묶어 내린 남성 사장님의 옆모습을 보고 맛집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손님에게서 ‘맛집 사장 장발설’을 들은 게 처음도 아니라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경험적 통계지만 꽤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작에서 설렘을 느끼는 건 그럴 법한 일이다. 희망을 갖고 힘차게 출발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에서 설렘도 희망도 멸종위기 상태 아니었던가. 고환율과 고물가, 깊어지는 경기 침체, 다달이 낮아지는 성장률 전망치,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청년고용률…. 어두운 경제지표들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면 경제 상황과 관련해 희망 같은 걸 선뜻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다르다. 조금의 희망도 없이 그저 버텨내기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새내기 자영업자들의 설렘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따사롭게 희망이 스며든다. 비록 이렇다 할 뚜렷한 근거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희망의 실체’를 고민하게 된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었고, 많은 것이 줄줄이 빠져나갔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 갇힌 것일까, 판도라의 상자에 붙들어 둔 것일까. 이왕이면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 희망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마다 ‘경제성장’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약속도 빠지지 않는다. 이미 소상공인들의 마음엔 한 자락 희망이 언제나 담겨 있다. 그 희망이 영영 갇혀 있게 될 것인지, 희망의 실현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정치는 어떤 실마리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문수정 산업2부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