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유럽 최대 냉·난방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인수한다. 인수 규모는 15억 유로(약 2조4000억원)로,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두 번째 대형 인수·합병(M&A)으로 꼽힌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면서 대형 M&A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플랙트는 1918년 설립돼 100년 이상 축적된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7억 유로(약 1조1000억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플랙트는 대형 데이터센터나 박물관·도서관, 공항 터미널, 대형 병원 등에 공조 설비를 공급해 왔다. 이탈리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과 UAE 힐튼호텔이 대표적이다.
이번 인수는 삼성전자가 2016년 80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조3400억원)를 들여 전장·오디오 기업 하만을 인수한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후 대형 M&A가 잇따라 체결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M&A 소식이 뜸해졌다. 반도체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기면서 삼성전자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위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지난 2월 이 회장이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사법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대형 M&A를 통한 성장 전략에 대한 기대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삼성전자는 M&A가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중요한 전략이라며 올해 유의미한 M&A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업전략에 대해 “로봇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분야의 국내외 우수 업체, 학계와 협력하고 유망 기술에 대한 투자와 인수도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공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성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조사업 중 공항, 쇼핑몰, 공장 등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공조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데이터센터 부문은 연평균 18%의 높은 성장률로 시장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진출하지 못했던 대형 공조 사업에 M&A를 통해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가정과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시장 중심의 개별 공조에 더해 대형 시설 대상의 중앙 공조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2014년 미국 시스템에어컨 유통전문회사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미국 냉난방공조(HVAC) 기업 레녹스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북미 시장을 공략하는 데 나섰다. HVAC 사업 확대를 위해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는 전략마케팅팀 소속이던 에어솔루션 사업 담당 부서를 ‘에어솔루션비즈니스 팀’으로 승격시켜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 노태문 사장은 “앞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공조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속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