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800억여원을 들여 휴렛팩커드 유한회사(HPE)로부터 6번째 슈퍼컴퓨터를 들여온다.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천장이 탑재된 6호 슈퍼컴은 그간 인공지능(AI) 연구를 위해 연구비로 고가의 GPU를 구매해왔던 과학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4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HPE 간 3825억원 규모의 ‘국가센터 슈퍼컴 6호기 도입 계획’ 관련 계약이 전날 최종 체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슈퍼컴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 ‘GH200’ 8496장이 탑재됐다. 600페타플롭스(PF)급 연산능력과 205페타바이트(PB)의 저장공간, 400Gbps 이상 초고속 네트워크 성능을 보유했다. 600PF(초당 60해번 계산)의 속도가 실제로 실현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로 빠른 슈퍼컴을 보유한 국가가 된다. 현재 600PF 이상 실측 성능이 확인된 슈퍼컴은 미국에 있는 엘 캐피탄·프론티어·오로라 3대뿐이다.
슈퍼컴 6호기 도입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분야는 AI다. 기존 슈퍼컴 5호기는 계산 성능이 6호기와 비교해 23배 이상 느린 25.7PF에 불과했다. 연산 능력도 GPU가 아닌 중앙처리장치(CPU)에만 의존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기존 슈퍼컴이 담당했던 기계항공·바이오신약 분야에 더해 자율주행·생명보건AI·자연어 처리 등 신기술로 연구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컴 6호기는 과학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국내 공공 부문에서 공동 활용할 수 있는 고성능 GPU 인프라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슈퍼컴 10대 중 7대가 네이버·카카오·삼성전자 등 사기업에 설치돼 있다. 그나마 있는 3대 슈퍼컴도 기상청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원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AI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고가의 GPU를 개별적으로 구매하거나 연구·개발(R&D) 예산을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에 쓰는 등 고충이 컸다. 이 때문에 한국 첨단과학 연구 내용이 해외로 유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컸던 상황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슈퍼컴을 들여오는 것과 별개로 가동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전기를 어떻게 확보할지는 숙제로 남아있다. 과기정통부 추산에 따르면 슈퍼컴 6호기에 들어갈 전기 용량은 연 15메가와트(㎿)에 달한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은 “인근 변전소에서 전기를 끌어오고 있어 물리적인 전력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정상 가동에 연 2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비용이 굉장히 비싼 만큼 과기정통부에서도 (비용 지원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슈퍼컴 6호기 도입으로 기존 방식으로 풀지 못했던 난제가 해결되고 혁신적인 연구 성과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슈퍼컴 6호기는 다음 해 상반기 중에 운영을 개시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