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영 목사의 다함께 선교] 혼자가 아닌 함께 이뤄가는 선교

입력 2025-05-15 03:10

“그런 교회가 있다면 저도 좀 알려 주세요. 저도 그곳에서 목회하고 싶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로 인해 상처받은 한 성도가, 자신이 멘토로 여기는 목회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문제없는 완전한 교회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그러자 목회자는 웃으며 위와 같이 대답했고 곧이어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만일 이 땅에 완전한 교회가 있다 해도 성도님이 그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 그 교회는 더는 완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연약함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완전하신 주님이 머리 되신 아름답고 신비로운 공동체입니다. 이 땅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완전한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성화의 과정을 지나며 날마다 변화해 가는 중입니다. 함께할 수 없는 성도란 없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존재들입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서로의 부족함이 눈에 띌지라도 주님의 긍휼과 사랑 안에서 동역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앞으로 세워질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드리신 기도에는 하나 됨을 통해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복음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요 17:21) 또한 예수님이 승천 직전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대위임령(Great Commission)도 단지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에 주신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너희’라는 복수형 표현을 통해 주님은 이 사명을 함께 감당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라 하신 표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연합처럼 우리 또한 연합하여 그 명령을 이루라는 주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은 각각의 부르심은 달랐지만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동역을 나눴습니다.(사도행전 3장) 안디옥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선교사로 파송됐고 2차 선교여행에는 실라가, 이후 마게도냐 지역으로는 디모데와 누가가 바울과 함께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고, 의사였던 누가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바울에게 영적·육적으로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역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도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은 다르고 주님께서 주신 재능과 자원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때 하나님의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선교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타인을 ‘낮게’ 여깁니다. 선교 현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어려움 중 하나가 동역자 간 갈등이라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철저한 죄인이었던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할 때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자매 된 동역자들과,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과 하나 되어 복음의 사명을 함께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교적 비전이 있다면 그것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동역자를 세우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가족이 선교의 동역자가 되고 교회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에 주신 비전을 이뤄간다면 주님의 기쁨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을 받았고 각자의 자리를 충실히 감당하며 함께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교단과 교파, 세대와 지역, 삶의 영역을 넘어 복음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선교적 비전을 이뤄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부흥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주님의 군사로 부름을 받았지만 이제는 함께 하나님 나라의 군대로 일어나 힘 있게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