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청년 이대로 두고 미래 말하나

입력 2025-05-15 00:32

지난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남 진주를 방문해 김장하 선생을 만났다.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불리는 김 선생의 말씀은 좀처럼 듣기 어렵다. 81세의 선생은 이날 만남에서 청년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청년들, 20대, 30대들이 요새 투표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인데 정치권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 후보는 “청년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이 없어졌습니다”라며 말을 보탰고, 선생은 “노력해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청년에 대한 걱정은 너무 흔해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청년 정책에서도 진지함이 보이지 않는다. 눈길을 사로잡는 청년 공약도 없다. 그러면서 청년을 앞세우는 행태는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무슨 발표를 하든 주위에 젊은 청년들을 세운다. 35세로 당내 최연소 의원인 김용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파격 발탁하기도 했다. 40세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청년 정치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웠다. 한국에서 청년이 정당을 만들어 유의미한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이준석이 처음이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청년수당, 청년기본소득 등 과감한 청년 정책을 주도했다.

그런데 공약을 보면 실망스럽다. 몇 가지 수혜성 지원 정책을 형식적으로 끼워넣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대선에서도 청년은 장식용으로 사용되고 마는 것인지 우려하게 된다. 청년 공약의 부실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화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기성 정치권이 청년을 여전히 세대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에서 청년 문제는 한 연령대, 한 세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은 인구소멸과 지방소멸로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사회 재생산 위기에 빠져 있다. 청년은 이 위기 해결의 키를 쥔 집단이다. 이들이 일자리를 찾고, 집을 마련하고,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민국, 경제, 미래가 다 달렸다.

청년을 이대로 두고 미래를 논할 수 없다. 인구, 고용, 교육, 복지, 부동산, 지방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 중심에 청년을 놓아야 한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청년의 분노는 전 세계적으로 발흥하는 극우세력의 핵심 동력이다. 청년 문제를 방치하다간 한국에서도 극우 정치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의 한 칼럼니스트는 “어른 세대는 젊은이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청년들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다시 집으로 들어와 긴 취업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일자리는 줄고, 교육비는 늘고, 내 집 마련은 꿈꿀 수 없고, 결혼은 연기된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지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뜨겁게 분출됐다.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광장을 주도한 이들은 청년이었다. 광장이 열리자 대학생, 취준생, 프리랜서, 비정규직, 자영업자, 미혼, 비혼, 페미니스트, 성소수자가 연단에 올라 가슴속 이야기들을 토해냈다.

대선 후보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대선에서도 실망한다면 청년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번 대선으로도 청년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드라마 같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쳐 열리는 대선이라서 청년층의 관심도 이례적으로 높다고 한다. 청년들에게 정치를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

김남중 국제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