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한 부부가 들꽃카페를 찾았다. 그들은 영락농인교회 김용익 담임목사와 아내 이영경 사모였다. 김 목사는 장로교단에서 농인으로는 처음으로 안수를 받은 이였고, 이 사모는 수화를 배우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가 남편을 만나게 됐다. 김 목사가 안수를 받은 후 대전과 제주에서 사역한 부부는 2015년부터 영락농인교회를 맡아 섬기고 있다고 했다.
이 사모는 삼각산에서 기도하던 중 “이곳에서 평생 기도하는 여자 목사가 서대문 쪽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굴까’ 궁금해하던 끝에 수소문해 카페를 찾아왔다고 했다. 농인교회에서 농인 목사로서 겪어야 했던 중압감과 낯섦 가운데 위로받고픈 마음을 가지고서다.
부부가 들꽃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카페 안이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나는 면류관을 쓴 부부의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진정 사랑하시는 이들이란 확신이 들었다.
“영락농인교회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들을 보며,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이 스쳐 갔다. 엄동설한에 남편에게 쫓겨 오갈 데 없던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영락농인교회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흘러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테이블에 앉으려는 부부에게 나는 “빚 받으러 오셨군요”라고 말했다. 부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과거사를 이야기하며 “교회에 진 빚을 갚게 됐다”고 기뻐하는 나를 보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영락농인교회에서 40일간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농인 교회를 향한 큰 계획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인 ‘농인을 위한 신학교 설립’ 비전을 전했다.
부부는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하나님이 이미 돈을 준비하셨다”고 말하자 그들은 “우리에겐 돈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때 사모의 전화벨이 울렸다.
사모의 부모는 농인과 결혼한 딸이 안쓰러워 첫 사역지였던 대전에 작은 빌라 한 채를 마련해주었다. 이후 제주로 내려간 부부는 그 집을 후배 목사에게 전세로 내주고 잊고 지내던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후배 목사가 연락해 온 것이다. 그는 “집값이 많이 올랐고 재개발 때문에 팔아야 한다”고 했다.
농인들을 위한 신학교 준비금이 마련된 순간이었다. 돈은 이미 준비되었다는 하나님 말씀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부부는 다음 날 대전에 가서 매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대전 집을 팔고 일이 빠르게 진행되던 중에도 김 목사는 확신이 없어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때 그는 꿈을 꾸었다. 집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눈앞에 강이 흐르며 춘천의 풍경이 펼쳐졌다.
2년 뒤 내가 “춘천 땅을 보러 가자”고 하자 부부는 동행했다. 차에서 내린 순간 김 목사는 꿈에서 본 그대로의 풍경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그는 그제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확신하고 ‘하나타운’ 부지를 매입했다.
4년 넘게 나는 매주 주일 오후마다 빠짐없이 영락농인교회에 가서 기도한다. 오직 농인교회와 하나타운을 위한 기도다. 삶의 나락에 있던 내게 쉼터가 되어준 교회에 빚을 갚겠다는 마음에서다. 매주 목요일 삼각산 기도에서도 영락농인교회를 빼놓지 않는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