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 신앙서 전투함 신앙으로 전환하라

입력 2025-05-15 03:06
지난달 15일 멕시코 산크리스토발에서 있었던 BSH 대회에서 핵심리더들이 함께했다. 순교의 형장인 차뮬라 마을 산 후안 광장에 세워진 대형 십자가 모습. 황성주 회장 제공

브라질 상파울루를 떠난 지 9시간 만에 멕시코시티에 도착, 치아파스주의 주도인 툭스툴라를 향했다. 공항에서 현지 안드레스 목사의 영접을 받고 숙소인 산 크리스토발로 이동했는데 이 지역이 그 유명한 순교지인 차뮬라 마을이 있는 곳이다.

1960년 이 마을에서 미겔 고메즈라는 개신교 전도자가 가톨릭 혼합주의 종교인 광신자들에 의해 혀가 잘리고 불에 살라 죽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종교집단은 가톨릭에서도 이단으로 규정된 조상숭배 혼합주의자들이었다.

이후 광란에 휩싸인 그들에 의해 수백 명의 성도들이 같은 방법으로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당시 치아파스에서는 산 크리스토발을 중심으로 개신교 부흥의 불길이 막 타오르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테러와 핍박에도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순교의 피로 적신 것이다. 20세기 한복판에 차뮬라의 산 후안 광장 앞에서 자행된 이 악마적인 홀로코스트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사건이다.

그러나 순교의 피는 반드시 역사한다. 순교는 영적 토양을 갈아엎고 영적 기류를 바꾼다. 순교자의 수는 전쟁 기근 전염병 자연재해와 맞먹는 인류 역사의 동인 중 하나이다. 순교의 피로 인해 인구 500만의 치아파스주에서 당시 극소수에 불과했던 개신교는 80년대 8%, 2000년 37%, 2020년 50%에 달하는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부흥은 멕시코 전역으로 퍼져 지금 멕시코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최대 2400만에 달한다고 한다. 도시는 도시대로, 시골은 시골대로 거의 모든 교회가 부흥하고 있고 선교사 파송도 중남미 2위로 이미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야말로 영적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과거 한국과 중국, 현재의 인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케냐가 그렇듯 영적 부흥은 경제 성장의 토양이 된다. 멕시코의 경제 규모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멕시코의 경제 수도 몬테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멕시코 역시 빈부격차, 마약 카르텔, 교육 불균형,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하나 현재 복음의 소망으로 꽉 차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가장 궁핍한 지역인 치아파스의 부흥은 매우 흥미롭다. 이번에 빌리온소울하비스트(BSH) 본부가 주도하는 치아파스의 모든 집회에는 비전에 굶주리고 가난한 심령을 가진 많은 사역자들이 몰려왔다.

사실 모든 부흥의 뒤에는 순교자의 피, 사역자의 땀, 중보자의 눈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 중 순교는 하나님의 히든카드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보다 탁월하다. 순교의 씨앗 하나를 심어 100배, 1000배, 1만배의 수확을 거둔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은 밀알이셨고 스데반 집사도, 사도 바울도, 토마스 선교사도, 그리고 2019년 튀르키예에서 복음을 전하다 흉기에 찔려 순교한 한국의 김진욱 선교사도 한 알의 밀알이었다.

순교는 끔찍한 일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받을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생각해 보라. 순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철저한 자기부정을 전제로 한다. 복음을 전하다 순교자가 되는 길(세계복음화 완성)이 있고, 복음을 삶으로 녹여내는 선교적 삶의 길(하나님 나라 완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선교지향적 공동체가 돼야 하고 순교적 영성으로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영혼 구원을 지향하지 않는 선교적 삶, 순교의 열매가 없는 순교적 영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랑은 ‘낭비성’을 갖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국제사랑의봉사단 사역을 위해 세계 모든 나라,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오지와 중남미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 많은 돈을 들여 힘들게 고생하며 왜 여기까지 오느냐고. 요즘은 프러포즈 이벤트를 위해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리기도 한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막달라 마리아는 보물 같은 옥합을 깨뜨려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었다. 역시 낭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는 정말 낭비적이다.

순교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2019년 김 선교사의 순교 이후 튀르키예에서는 그동안의 안락함을 깨뜨리는 은혜의 물결이 일어났다. 당시 순교지인 디야르바크르에 있는 현지인 교회 지도자의 고백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 저희 친척들이 제게 전화합니다. 당신도 조심하라고…. 그러나 내가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지 말아야 합니까. 오히려 나는 더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다해 복음 사역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분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이끄는데 전력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순교를 허락하신다. 영적 대각성이나 선교 부흥은 반드시 순교의 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흥은 선교적 삶을 순교적으로 살아낼 때 일어난다. 모든 순교 사건은 우연이 아니며 무모함도 아니다. 더욱이 낭비는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경륜이요 절대 섭리이다.

한국교회 선교 열정이 식어지고 있다며 한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한국의 세계선교는 강력한 선교적 야성, 즉 순교와 순교적 영성을 지향할 때가 되었다. 지상 대명령 성취를 위해 한국교회는 신속하게 복음 전파의 구조와 선교적 플랫폼으로 재편성돼야 한다. 교회 부흥을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에서 ‘얼마나 많이 파송했느냐’로 재정의할 때가 됐다. 한국 선교는 ‘얼마나 많이 파송했느냐’에서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느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안전지대에 머무는 ‘유람선 신앙’에서 벗어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전투함 신앙’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성도들이여, 영적인 잠에서 깨어 일어나라. 이왕 고통을 받고 살 바엔 모든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해 바꾸자. 이왕 죽을 바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이왕 살 바엔 그리스도를 위해 살자.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