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협상 의제에 포함된 환율과 관련해 양국이 실무 협의에 돌입한 가운데 통상·환율·금융이 결합된 미국의 전방위 압박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한·미 재정 당국 실무진은 환율 관련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2+2 협의’에서 환율 문제를 별도 의제로 다루기로 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환율 실무협의를 두고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 때처럼 환율을 통상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것이라는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독일 등 주요국에 압박을 가해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등의 통화가치를 대폭 절상시킨 사례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8대 비관세 부정행위 중 하나로 환율조작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따라 미국이 대미 무역 흑자국을 중심으로 통화 절상을 요구할 것이란 우려가 커져 왔다. 한국도 미국을 상대로 큰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원화 절상을 요구할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이 감소세에 접어들고 있지만 미국은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2의 플라자 합의라는 ‘마러라고 합의’를 염두에 둔 100년물 미국 국채 ‘강매’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마러라고 합의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달러 약세 이후에도 달러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국채 100년물을 교역 상대국에 사실상 무이자로 강매시키거나 기존 국채를 영구채로 교환시켜 미국의 고질적인 재정적자와 강달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달 발표될 ‘환율 보고서’도 변수다. 미국 재무부는 6개월마다 ‘주요 교역 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발간한다. 한국은 2016년부터 7년간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가 2023년 하반기와 지난해 상반기 두 차례 제외됐지만 지난해 하반기 재지정됐다. 이번 분류 결과에 따라 미국 정부의 외환시장 정책 개입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국의 대외 신인도 타격이 우려된다.
다만 마러라고 합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많다. 국채는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강압적 방식으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이 국채 매입을 강요할 경우 일본·중국 등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로 시장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